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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글로벌 정유공장 프로젝트 동향 본문
2017 글로벌 정유공장 프로젝트 동향
1. 정유공장은 아직도 큰 시장이다.
정유공장 건설의 역사는 160년을 넘길 정도로 길다. 오래전부터 어느 나라든 정치적 혹은 전략적인 이유로 정유공장을 갖고 싶어했다. 이제 정유공장을 소유한 나라의 수는 116개국을 넘겼다. 그 긴 기간 동안 700개가 넘는 정유공장이 건설되었다.
정유공장에도 굴뚝이 있다. 그렇다고 모든 나라에서 다 굴뚝산업으로 간주되지는 않는다. 정유공장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해가 갈수록 끊임없이 더 많이, 더 크게 지어지고 있다. 2017년 이후에도 3년 동안 40개국에서 3,000억 달러를 투자하여 90개의 정유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정유공장은 오래전에도 건설되었고, 지금도 건설 중이며, 미래에도 건설될 것이다. 다만 EPC플레이어만 바뀌고 있다.
한국에서의 첫 번째 정유공장은 1962년 플루어가 수의계약으로 지었다. 우리는 이 곳에서의 건설 경험을 시작으로 30여년간의 분투노력 끝에 해외로 나가 큰 성과를 이루어 냈다. 모든 플랜트 분야 중 우리가 가장 잘 하기도 하지만, 경쟁력이 뛰어난 우리의 주력 상품이기도 하다. 오늘도 중동을 포함한 전세계 곳곳에서 현대식 초대형 정유공장이 속속 건설되고 있다. 그곳에 우리의 기술자와 관리자들이 땀을 흘리고 있다.
2. 정유공장 건설의 역사
그림1. 18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건설된 신규 정유공장 수
1) 정유공장 건설의 시작(1800년대 후반)
162년전, 세계가 공인한 지구상 최초의 정유공장이 1856년 유럽 남동부의 루마니아에서 건설이 시작되었다. 1800년대의 루마니아는 유럽에서 가장 큰 석유 생산국이었다. 이 정유공장은 연철을 재료로 한 실린더형 용기를 독일에서 수입하여 만든 산업용 증류시설이었다. 1857년에 완공되었으며, 주생산품은 등유(Kerosene)였다. 이 등유로 루마니아의 수도인 부카레스트는 1,000개의 가로등에 불을 밝힌 세계 최초의 도시가 되었다.
미국 최초로 상업적인 규모의 정유공장이 남북전쟁이 발발하던 해인 1861년 피츠버그에서 지어졌다. “뛰어난”이란 이름을 붙인 이 정유공장에서 하루에250배럴의 등유를 생산했다. 이 정유공장은 1880년대 초반까지 피츠버그 시내 지도에 표기될 정도로 유명했으며, 설립자는 회사 이름만큼이나 능력이 뛰어났다. 그리하여 피츠버그는 세계 최초로 석유 생산자, 정유업자, 수송업체들이 만나 석유를 팔고사는 장소가 되었다. 이렇게 피츠버그는 미국의 첫 번째 석유 도시로 성장했다.
남북전쟁에서 석유는 전략 아이템이었다. 1860년 중반 유럽은 미국에서 생산된 정유제품의 70%를 수입했다. 북부 연합군에게 석유는 전쟁 자금이었으며, 반대로 남부군은 면화를 수출해 이를 만회했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1년후인 1866년에 애틀랜틱석유회사가 설립되었고 이 회사는 1870년에 당시에는 획기적이며 효율적인 정유방법인 최초의 분류탑을 개발하여 정유공장을 완공했다. 정유공장 건설은 이제 미국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피츠버그, 필라델피아, 클리블랜드, 뉴욕 및 산유지가 정유산업의 5대 밀집지역으로 등장했다. 이들 정유공장에서 저렴한 양질의 등유가 대량으로 생산되어 시장 수요를 충족시킴으로써 본격적인 정유시대를 가져왔다. 1861년 석유수출이 시작된 이후 1880년대에는 세계적인 수요증가에 힘입어 미국의 석유수출량이 국내 생산량의 60%를 상회하고 1882년에는 전세계시장을 거의 독점했다.
2) 미국내 정유공장 건설의 확장(1900년대)
1903년에 포드자동차회사가 설립되고, 라이트 형제가 휘발유엔진에 프로펠러를 장치한 글라이더로 비행에 성공함으로써 휘발유 시대의 도래를 예고했다. 1912년에 원유에 열을 가하여 끓는점에 따라 휘발유, 등유, 경유, 중유를 차례로 생산해내는 최초의 현대식 정유공장이 미국에 세워졌다. 그리고 1915년까지 휘발유가 생산되어 주유소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1920년대에는 정유공장에서 생산되는 휘발유의 비중이 40% 이상이나 되었다.
1차 세계대전은 산업계에 대규모적이고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다 주었다. 20세기의 전쟁에서 석유가 수행한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그 이유는 자동차, 선박, 비행기 등이 전략적 병기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군사 목적상 필요에 의하여 제트유의 발견을 가져왔다. 제트엔진의 등장은 프로펠러 비행기의 퇴장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동시에 비행기연료로서 등유가 우세를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이 기간(1910년대) 동안 미국은 전 세계 정유공장 수의 75%에 달하는 18개를 건설했다.
1939년에 시작된 2차 세계대전은 결국 “석유전쟁”이었다. 당연히 석유는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데 크게 한몫을 했다. 미국은 2차 대전 당시 전세계 석유의 70%이상을 공급했다. 석유산업은 확대일로에 있었고 발 빠른 사업가들은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이 전쟁 기간(1930-1940년대)에 미국에서는 30개의 새로운 정유공장이 건설되었다.
3) 전세계적인 정유공장 건설 붐, 1960년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9년, 일곱 자매(Seven Sisters)라는 별명이 붙은 7개의 국제석유회사(모빌, BP. 쉘, 쉐브론, 걸프오일, 텍사코, 에쏘)가 미국과 공산권을 제외한 세계 매장량의 82%, 생산의 80%, 정유시설의 76%를 장악하고 있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석탄이 가장 높은 비중이었지만, 1965년 이후에는 석유가 추월하였다. 가장 큰 이유는 차량과 항공기 등 교통수단의 이용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차량의 숫자가 1948년 5,300만 대에서 1965년에는 1억 7.500만 대로 3.3배 이상 증가했다. 더욱이 1960년대로 들어오면서 글로벌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미국, 유럽, 아시아, 신흥 독립국 등에서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정유공장 건설 붐을 일으켰다.
1960년대는 세계적으로 어느 때보다 정유공장 건설이 가장 많이 이루어진 시기였다. 유럽에서는 30개의 정유공장이 지어졌으며, 미국의 정유공장은 이제 대부분의 변두리 주에도 들어서게 되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가장 많은 12개의 정유공장을 건설하였으며, 그 다음이 인도로 6개가 지어졌다. 그리고, 호주(3), 한국(2), 말레이시아(2), 태국 (2), 파키스탄 (20), 필리핀(1), 중국(1), 싱가포르(1), 방글라데시(1), 스리랑카(1) 등의 나라에 정유공장이 들어섰다. 중동에서는 사우디, 쿠웨이트, 이라크, 요르단의 4개국에서 정유공장 건설이 완공되었다.
4) OPEC의 탄생, 그리고 새로운 일곱 자매들
1960년 9월 산유국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한 석유수출기구인 OPEC이 드디어 결성됐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OPEC의 단결은 더욱 강화되었다. 중동전쟁때 석유를 무기화하여 미국 중심의 반 아랍세력을 제압하고 일곱 자매로부터 석유지배권을 빼앗았다. 더구나 1970년대 초에는 알제리(1971), 리비아(1971), 이라크(1972), 사우디(1972), 쿠웨이트(1972), 아부다비(1972), 이란(1973), 베네주엘라(1976) 등의 국가에서 국유화 바람이 강타했다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전세계 석유산업을 주름잡았던 일곱 자매라는 석유대기업의 독점력은 점차 지위를 잃게 되었다. 이들을 대신하여 새로운 일곱 자매들(New Seven Sisters)들이 등장했다. 사우디 아람코,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베네수엘라 PDVSA, 러시아 가즈프롬, 브라질 페트로브라스, 이란 NIOC, 중국 CNPC 등의 개발도상국 국영석유회사들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들은 세계 석유/가스 생산과 매장량의 약 3분의 1을 지배하고 있다. 더구나, 이 새로운 일곱 자매 외에도 수많은 국영석유회사들이 있으며 이들의 규모와 영향력은 국유화, 공격적인 탐사, 설비 투자, 인수합병 등을 통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림2. 일곱자매(7개 국제석유회사)와 새로운 일곱자매(7개 국영석유회사)
아울러, OPEC산유국은 1970년대초부터 공업화의 일환으로서 자국지원의 효율적 활용과 부가가치 재고를 위해 정유와 석유화학 콤플렉스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로서 내수용이 아닌 수출용 정유공장을 짓기 시작했으며 쿠웨이트, UAE, 리비아도 동참했다.
사우디에서는 리야드, 얀부, 주베일의 세 곳에서 4개의 정유공장이 1970년대 말에 착공하여 1980년 초반에 준공했다. 이란은 1970년대에 이스파한, 쉬라즈, 타브리즈, 테헤란의 4개 정유공장을 건설하였으며, 특히 아바단 정유공장은 1977년에 일산 60만 배럴로 확장하면서 당시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뽐냈다. 이라크에서는 바이지 정유공장이, UAE에서는 아부다비와 루와이스 정유공장이, 알제리에서는 아르주와 스킥다 정유공장이, 리비아에서는 자위야, 라스라누프, 토부룩의 3개 정유공장이 각각 이 시기에 완공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프로젝트의 EPC를 이탈리아의 스남프로게티와 일본의 치요다가 독점하고 있었다.
5) 정유공장의 비약적인 발전
미국의 초기 정착민들에게는 골칫거리였던 석유가 이제는 정유공장을 거치면서 검은 황금이 하얀 황금으로 변했다. 최초의 정유공장은 난방과 조명에 필요한 등유(Kerosene)를 만들기 위해 지어졌다. 그러나 지금의 정유공장은 휘발유 생산을 최종 목표로 두고 있다.
1800년대 말에는 정유공장 하나의 생산능력은 일산 1,000배럴이었으나 이제는 400배나 커진 400,000배럴이 일반적이 되어 버렸다. 가장 큰 것은 쿠웨이트의 알주르 정유공장으로 일산 615,000배럴에 달한다. 단일 장소에서 건설된 세계 최대 규모의 정유공장이 인도의 잠나가르에 있으며 일산 120만 배럴의 생산능력을 자랑한다.
그림3. 국가별 정유공장 생산능력
2016년 현재 전세계 정유공장의 생산능력은 하루에 1.1억 배럴에 달한다. 국가별로는 미국이 140여개의 정유공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원유 정제용량으로는 하루 2,000만 배럴로 전세계 용량의 18%를 차지한다. 미국은 정제용량과 정유공장 숫자면에서 2위의 중국보다 2배가 더 많다. 그러나 1970년대 말 이후로는 국제적인 규모의 신규 정유공장을 하나도 건설하지 않았다. 1977년에 완공한 일산 20만 배럴의 루이지애나의 게리빌 정유공장이 마지막이었다.
서유럽에서는 1960년대가 정유공장 건설의 피크를 이루었는데 전체 75개의 정유공장 중 무려 35개가 이때 들어섰다. 그러나 미국과 마찬가지로 1990년 말 이후로는 신규 정유공장 건설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동유럽에서도 45개의 신규 정유공장이 건설되었는데 대부분이 1980년대 이전에 건설되어 지금은 많이 노후화된 상태다. 총 27개의 정유공장을 갖고 있는 일본도 1960년대와 70년대에 21개를 집중 건설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새로운 정유공장을 1980년 말 이후로는 짓지 않았다.
반면에 대형 신규 정유공장을 대대적으로 건설하는 국가들이 생겼다. 중국과 인도, 그리고 중동이다. 중국은 1970년대와 80년대에 16개의 대형 신규 정유공장을 집중적으로 건설한데 이어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8개를 지었고, 2010년대에 들어와서는 폭발적인 내수 증가에 따라12개의 정유공장을 신규로 건설하고 13개는 확장사업을 벌이고 있다. 또 다른 인구 대국 인도에서는 1960년대와 90년대에 각각 6개의 신규 정유공장을 건설한데 이어 2010년대로 들어오면서 더욱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중동은 총 41개의 정유공장 중 반이 1980-2000년대 사이에 지어졌다. 더구나 지금 건설 중이거나 계약을 앞두고 있는 정유공장만도 8개나 된다.
일산 40만 배럴의 정유공장을 짓기 위해서는 100억 달러 이상의 돈과 축구장 100개가 들어갈 면적의 땅을 필요로 한다. 또한 공사를 끝내기 위해서는 10만명 이상의 인력과 2,000명 이상의 전문 기술자가 동원되어야 한다. 거대한 정유공장을 건설하는 현장은 국적과 종교, 인종과 개성이 서로 다른 업체들이 서로 마주쳐 경쟁하는 전쟁터와 같다. 또한 수만 명의 거대한 인력 집단이 공정률를 달성하기 위해 한군데의 가설 숙소에서 먹고, 싸고, 휴식을 취하며 잠을 잔다. 아주 오랜 옛날, 전쟁을 통해서만 일어날 수 있는 남자들의 집단 생활이, 지금의 정유공장 건설 현장에서 재현되고 있다.
3. 2000년 이후, 변화하는 정유공장 EPC업계의 판도
1997-1999
한국EPC업체가 해외에서 대형 정유공장 프로젝트를 수주한 첫 케이스는 멕시코의 카데레이타(Cadereyta) 정유공장 프로젝트였다. SK건설 컨소시엄이 1997년 25억 달러에 계약했다. 당시로서는 단일 프로젝트로 한국업체가 수주한 역사상 가장 큰 프로젝트였으며, 1997년 12월의 외환위기와 맛 물려 계약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어 다음해인 1998년에 GS건설이 카타르의 노드코 정유공장 확장사업을 6.8억 달러에 수주했으며, 이 또한 난관을 뚫고 수주한 값진 결과물이었다. 1999년 SK건설 컨소시엄은 또 다시 멕시코 마데로 정유공장 프로젝트를 12억 달러에 수주는 쾌거를 올렸다. 2000년이 오기 전에 벌써 EPC업계의 판도가 변화하는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SK건설의 멕시코 정유공장 프로젝트는 손실을 보면서 발주처와 법정분쟁으로 가는 사태까지 발전했다.
그림4. 연도별 정유공장 프로젝트 발주 규모(2000년-2017년)
2000-2001
드디어 2000년 밀레니엄의 막이 열렸다. 첫 번째의 대형 정유공장 프로젝트 수주는 미국의 플루어에게 돌아갔다. 플루어는 베네수엘라에서 12억 달러의 업그레이드 공사를 수주하면서 포문을 열었다. 세계 엔지니어링업계의 대부답게 플루어는 이어 같은 해에 캐나다의 오일샌드 정유공장 확장사업을 20억 달러에 계약했다.
2001년 9월 11일 테러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 사건은 역으로 중동에 평화를 가져다 주었다. SK건설은 2001년 쿠웨이트 아흐마디 정유공장 화재복구사업을 3억 달러에 수의 계약하면서 멕시코에서의 실패에서 벗어나 기사 회생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2003
2003년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이 끝난 후 유가는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중동을 포함한 산유국에는 돈이 흘러 넘쳤다. 그야말로 사상 최대의 호황 그 자체였다. EPC업체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시장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시장이 바이어마켓에서 셀러마켓으로 변해 EPC업체들을 즐거운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일본 EPC계의 대표주자인 JGC는 일산 125,000배럴의 오만 소하르 정유공장 프로젝트 입찰에서 한국의 경쟁을 제치고 2003년 13억 달러에 따가는 기염을 토했다. 같은 해 프랑스의 한때 식민지였던 베트남에서는 테크닙이 JGC 및 TR과 컨소시엄을 짜 130,000배럴의 첫 번째 신규 정유공장 프로젝트를 30억 달러에 수주했다. 멕시코에서는 125,000배럴을 추가 증설하는 36억 달러의 미나티틀란 정유공장 현대화사업 입찰에서 TR, 드라가도스. 플루어, 삼성엔지니어링 등이 수주에 성공하였다. 2003년은 JGC, 테크닙, TR이 아직도 건재함을 과시하던 때였다.
2005-2007
인도에서 가장 큰 민간기업인 릴라이언스가 발주한 잠나가르 정유공장 확장프로젝트를 미국의 벡텔이 EPCM방식으로 2005년에 수주했다. 이 프로젝트는 580,000배럴을 추가하는 63억 달러의 사업으로 2008년에 완공되었다. 이 정유공장의 시설 능력은 1단계 시설을 더해 총 1,240,000배럴이 되면서 당분간 어는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정유공장으로 자리잡았다.
업그레이드와 확장 위주로 발주되는 미국에서는 BP가 40억 달러를 투자한 화이팅 정유공장 프로젝트(일산 260,000만 배럴 추가 증설)의 EPCM업무를 플루어가 2006년에 계약했다. 또한 234,000배럴을 추가하는 39억 달러의 게리빌 정유공장 확장사업은 미국의 CB&I가 2007년에 수주했다. 이어 325,000배럴을 추가하는 70억 달러 규모의 모티바의 포트아서 정유공장 확장사업에 제이콥스와 벡텔의 컨소시엄이 2007년에 EPC업체로 선정되었으며, 플루어도 별도로 19억 달러를 수주했다.
북아프리카의 이집트에서는 일산 100,000배럴의 모스토로드 정유공장 프로젝트를 GS건설이 EPC를 맡고, 미쓰이가 파이낸싱하는 조건으로 2007년에 37억 달러에 계약되었다. 러시아에서는 58억 달러가 소요되는 140,000배럴의 테네코 정유공장 프로젝트가 나왔으며 2007년 플루어가 PMC 및 EPCM업체로 선정됐다.
2008-2009
스페인의 카르타게나 정유공장 확장 프로젝트는 일산 12만 배럴을 추가 증설하는 43억 달러 규모의 사업으로 TR, 플루어, 포스터휠러 등이 2008년부터 수행에 참여했다. GS건설은 타크리어 발주의 그린디젤 프로젝트를 2008년 11.4억 달러에 수주하면서 UAE시장 진입에 성공했다.
브라질의 페트로브라스가 발주한 일산 230,000배럴의 아브레우 이 리마 정유공장 프로젝트에 브라질 현지업체와 중국업체(CNEC) 등이 2009년에 계약하였으나, 당초 예산 40억 달러대비 4배나 많은 164억 달러가 투입되었다. 콜롬비아에서는 85,000배럴을 추가 증설하는 38억 달러의 카르타게나 레피카 정유공장 입찰에서 CB&I가 2009년 EPC업체로 선정되었다.
그동안 대형 정유공장 프로젝트 시장에서 선진업체의 견제로 한국 EPC업체가 수주에 성공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2009년 말부터 중동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진행 중인 상황 속에서 실시된 사우디 주베일 정유공장 입찰에서 한국업체가 전체 금액(96억 달러)의 25%를 가져가는 기염을 토했다. 2009년 테크닙이 30억 달러, TR이 18억 달러, 대림산업이 7.5억 달러, 삼성엔지니어링이 14억 달러, SK건설이 4.2억 달러에 각각 수주했다. IOC(일곱자매)가 아닌 NOC(신 일곱자매)가 실시하는 경쟁입찰에서는 한국업체의 강점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더구나, 같은 해에 벌어진 UAE 루와이스 정유공장 확장 입찰에서는 한국업체가 싹쓸이를 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96억 달러의 루와이스 프로젝트를 SK건설이 21억 달러, GS건설이 36억달러, 삼성엔지니어링이 27억달러, 대우건설이 12억달러로 각각 나눠 가졌다.
삼성엔지니어링은 그동안 집중하던 사우디에서 벗어나 2009년 북아프리카의 알제리에서 스킥다 정유공장 프로젝트를 26억 달러에 수주했다.
2010-2011
2010년이 되면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수주 경쟁에 불이 붙었다. 중동에서는 우리끼리의 경쟁이 심화되었고, 스페인의 TR이 한국업체의 대항마로 등장했다. 일산 400,000배럴의 얀부 신규 정유공장 입찰에서는 대림산업이 20억 달러를, SK건설이 5.6억 달러를, TR이 7.7억 달러를 2010년에 각각 계약했다. 대림산업은 2010년 쿠웨이트 정유공장의 LPG-4플랜트를 9억 달러에 수주하면서 18년만에 KNPC에 재진입하는 기회를 잡았다.
2011년에 터키에서는 2개의 대형 정유공장 프로젝트가 계약되었는데, 30억 달러의 이즈미트 정유공장 업그레이드 사업에서는 TR이 단독으로 수주했으며, 56억 달러의 스타 리파이너리 프로젝트에서는 TR(12억 달러), 사이펨(12억 달러), GS건설(10억 달러)의 3사 컨소시엄이 가져갔다.
인도네시아에서는 GS건설이 칠라찹(Cilacap) RFCC프로젝트를 14억 달러에, 필리핀에서는 대림산업이 바탄(Bataan) 정유공장 확장 프로젝트를 20억 달러에 수주했다. 아시아에서도 일본을 제압하는 강세가 이어졌다.
베네수엘라의 50억 달러 규모 푸에르토 라크루즈 정유공장 중질유 업그레이드 프로젝트 입찰에서는 치요다와 JGC의 컨소시엄이 2011년 말에 EPCM으로 수주했다. 그 다음해에 포스터휠러와 도요엔지니어링이 일산 14만 배럴을 추가 증설하는 50억 달러의 베네수엘라 엘팔리토(El Palito) 정유공장 확장 프로젝트를 EPCM방식으로 수주했다.
2012-2013
오만의 소하르 정유공장 확장 프로젝트 입찰에서는 최저가로 응찰한 삼성엔지니어링이 계약을 포기함에 따라 3위의 페트로팩과 대림산업의 컨소시엄이 2012년 21억 달러에 수주하는 기회를 잡았다. 2012년에 계약된 또 다른 프로젝트는 40만 배럴의 자잔 신규 정유공장으로 치열한 경쟁 속에 SK건설이 11억 달러, TR이 9억 달러, JGC가 10억 달러, 페트로팩이 14억 달러에 각각 수주했다. 베트남의 두 번째 정유공장인 일산 20만 배럴의 응이손(NghiSon) 프로젝트 입찰에서는 JGC, 테크닙, GS건설, SK건설의 4사 컨소시엄이 2013년 40억 달러에 계약했다.
2014
이라크에서 유일하게 자체 자금으로 발주한 일산 140,000배럴의 카르발라 신규 정유공장 프로젝트에서는 한국업체로만 구성된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GS건설, SK건설의 4사 컨소시엄이 2014년 61억 달러에 계약하였다.
그리고 말레이시아의 일산 30만 배럴짜리 라피드(RAPID) 정유공장 입찰에서는 한국업체가 전멸하는 일이 발생했다. 패키지 1번에서는 치요다와 CTCI의 컨소시엄이 29억 달러에, 패키지 2번에서는 사이노펙이 13.3억 달러에, 패키지 3번은 TR이 15억 달러에, 패키지 4번은 페트로팩이 5억 달러에, 패키지 5번은 도요가 24억 달러에 각각 수주했다, 그리고 동력 및 간접시설 패키지는 테크닙과 플루어 컨소시엄이 EPCM으로 계약했다.
2015-2016
쿠웨이트의 CFP프로젝트와 1년의 차이를 두고 발주한 일산 615,000배럴의 알주르 신규 정유공장(NRP) 입찰에서 패키지 1번은 TR(리더), 사이노펙, 한화건설의 컨소시엄이 42.8억 달러에, 패키지 2번과 3번은 플루어(리더), 대우건설, 현대중공업의 컨소시엄이 59.3억 달러에, 패키지 3번은 사이펨(리더)과 인도 에사르의 컨소시엄이 15.8억 달러에, 패키지 5번은 현대건설(리더), 사이펨, SK건설의 컨소시엄이 15.4억 달러에 각각 수주했다. 그러나 한국의 빅5가 프로세스쪽 수주에 실패한 상태에서, NRP프로젝트는 속 빈 강정처럼 되어 버렸다.
중동보다는 중앙아시아에 집중하고 있는 현대엔지니어링은 투르크메니스탄에서 2015년 9.4억 달러의 정유공장 현대화 사업을 수주했다. 이어 2016년에는 투르크메니스탄의 GTL플랜트를 38.8억 달러에 수주하면서 경제불황과 저유가 여파속에서도 승승장구하는 실력을 보여줬다.
4. 정유공장 프로젝트의 글로벌 EPC플레이어들
그림5. 글로벌 EPC업체별 정유공장 프로젝트 수주실적(2000년-2016년)
지난 17년 동안 계약된 정유공장 프로젝트 전부를 분석해 보면, 주요 플레이어로 미국에서는 플루어, 제이콥스, CB&I를, 유럽에서는 TR, 테크닙, 사이펨을, 일본에서는 JGC와 치요다를, 한국에서는 소위 빅5(GS건설, 삼성엔지니어링, SK건설, 대림산업, 현대엔지니어링)를 뽑을 수 있다.
이들 14개사 중, 플루어가 단연코 선두에 서있다. 정유공장 건설의 역사는 플루어의 역사라고 말할 정도다. 정유공장 건설이 시작된 이래, 이 분야의 글로벌 최대 강자는 플루어였다. 플루어가 1930년에 최초로 수주한 대형 프로젝트는 쉘 정유공장이었으며, 최초의 해외사업도 바레인 정유공장이었다. 1962년 쿠웨이트산 원유로 설계된 한국 최초의 울산정유공장도 플루어가 지었다. 1965년에는 KNPC가 최초로 발주한 슈에이바 정유공장을 건설했다.
플루어의 성공은 기술, 엔지니어링, 건설 분야의 능력보다 전략과 프로젝트 매니지먼트에 있다. 그 진가는 2014년과 2015년에 연거푸 수주한 쿠웨이트의 CFP와 NRP프로젝트에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중동에서 FEED와 PMC가 주업종이었던 플루어가 어떻게 93억 달러의 EPC를 수주할 수 있었을까? 대우건설과 현대중공업을 컨소시엄 파트너로 잡는 탁월한 전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위 말하는 신의 한수로 막대한 이익을 구가하고 있는 것이다.
스페인의 테크니카스 리유니다스(TR)는 2000년대로 들어오면서 그 동안 주무대였던 중남미에서 벗어나 과감히 중동으로 방향을 틀었다. 특히 까다롭기로 유명한 사우디 아람코를 타겟으로 삼아 적극 공략하는 전략이 주효했다. 아람코에서의 성공으로 TR은 사우디에 계속 대형 수주를 따냈으며, 쿠웨이트, 터키, 말레이시아로 영토를 확장했다. 최근 3년 동안에는 중동에서 110억 달러 규모의 정유공장 프로젝트를 수주하면서 EPC업계의 떠오르는 스타임을 각인시켰다.
JGC는 일본의 대표주자답게 꾸준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JGC는 2003년 오만 소하르 정유공장 입찰에서 한국업체와의 경쟁에서 이긴 이후에는 전략을 바꿔 한국과 제휴하는 전략을 택했다. 사우디 자잔 정유공장 프로젝트에서는 대우건설과의 제휴로, 베트남 정유공장과 쿠웨이트 CFP에서는 GS건설과 SK건설과의 컨소시엄으로 입찰하여 수주를 거머쥐었다.
프랑스의 테크닙은 세계 플랜트 시장에서 못하는 게 없는 만능의 전천후 플레이어다. 육상과 해상은 물론 해저에서도 강력한 리더이며 에틸렌클럽과 LNG카르텔의 고정 멤버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유공장에 관한한 전통적으로 항상 선두적인 위치에 있었다. 정유공장 전체를 EPC로 수행하기도 하지만 하이드로젠과 같은 공정에 대해서는 라이선스 제공은 물론 설비만을 제공하면서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컨소시엄 보다는 단독 참여를 선호한다.
이탈리아의 사이펨은 파이프라인 전문업체로 2006년에 오일 & 가스분야의 최강자 중 하나인 스남프로게티를 인수했다. 지금은 이름이 사라졌지만 스남프로게티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 말까지 유럽, 중동, 아프리카 등에서 정유공장 건설을 주름잡던 최고 강자였다. 그러나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연속 적자를 내면서 그 위세는 현저히 약해졌다.
아랍에미레이트에 본사를 둔 영국 페트로팩의 역사는 짧다. 페트로팩은 EPC업을 시작하면서 업스트림에 집중하는 전략을 잡았다. 2004년에 수주한 6.8억 달러의 쿠웨이트 KOC프로젝트가 당시에는 가장 컸을 정도였다. 그러던 페트로팩이 한국업체의 2013년 어닝쇼크를 빌미삼아 쿠웨이트의 KNPC CFP입찰에서 컨소시엄 리더의 자격으로 수주에 성공했다. 정유공장 시장으로 진입하는 기회를 페트로팩이 재빨리 낚아챈 것이다. 그 이후 오만 소하르 정유공장 확장과 쿠웨이트 NRP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어느날 갑자기 정유공장 프로젝트의 메이저 플레이어로 등장했다.
2000년대로 들어오면서 역전의 용사들이 EPC무대에서 사라졌다. 유럽의 전통적인 엔지니어링 강호였던 독일의 루르기와 우데는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일본의 치요다는 LNG플랜트에, 도요엔지니어링은 비료 및 폴리머 플랜트에 집중하면서 정유공장 프로젝트 시장에서는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한때 정유공장 EPC분야의 강자였던 미국의 포스터휠러는 지난 2014년 영국의 에이멕에 흡수 합병당한 뒤 지금은 FEED와 PMC에만 참여하고 있다. 벡텔은 100억 달러 규모의 초대형 프로젝트를 단독으로 수행할 때만 실력발휘를 할 수 있으며, 제이콥스와 CB&I는 미주지역 내 정유공장 EPC플레이어로 국한되어 있다.
한국의 EPC업체들은 후발 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유공장 프로젝트 시장에서는 외국의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눈부시게 성장해왔다. 한국업체들은 1993년에 기존의 종합건설업에서 EPC분야로 확대하면서 정유공장 프로젝트 수주전에 뛰어들었다.
그림6. 한국 EPC업체의 연도별 정유공장 수주실적(1993년-2016년)
1993년 한해에 총 7천9백만 달러의 수주고를 올렸던 한국 EPC업체는 1997년부터 1999년사이 2건의 대형 멕시코 정유공장과 1건의 카타르 정유공장을 수주하면서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더구나 2001년의 911테러사건은 한국EPC업체에게도 IMF위기를 벗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2007년과 2008년 GS건설은 이집트와 UAE 그리고 러시아의 타타르스탄 공화국에서 총 42억 달러의 정유공장 프로젝트를 수주하면서 한국업체 중 선두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5개 업체가 2009년 가장 많은 156억 달러어치의 정유공장 프로젝트를 UAE, 사우디, 알제리, 바레인, 그리고 태국에서 거두게 된다. 한국업체들은 미국과 서유럽을 제외한 나머지 시장 모든 곳에서 승리를 구가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세계의 글로벌 EPC업체들은 그저 한국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봐야만 했다. 그러나 그 기간은 5년을 넘지 못했다.
2014년이 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유럽과 일본의 경쟁업체들은 한국을 계속 눈 여겨 보고 연구하고 있었다. 그들은 인도인력으로 무장하면서 한국과의 가격경쟁에서 이기기 시작했다. 반대로 2013년에 대규모 손실을 발표한 한국업체들은 뒤로 밀려나갔다. 한국업체들이 컨소시엄 리더에서 배제되는 일이 쿠웨이트에서 생겼다. 말레이시아의 정유공장 입찰에서는 한국업체가 전멸하는 일도 벌어졌다. 그렇게 잔인한 2015년과 2016년이 지나갔다.
앞으로 정유공장 건설은 살아남은 자들의 게임이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글로벌 EPC플레이어는 이제 11개사에 불과하다. 이 중 5개가 한국업체다. 이들끼리 중동과 아시아에서 진검승부를 벌여야 한다.
그림7. Global Refinery EPC Players
5. 정유공장 프로젝트의 미래
정유공장을 새로 짓거나 확장하는 일은 매우 복잡하며 어렵다. 개념을 잡고, 타당성 조사와 기본설계를 하고, 자금을 조달하고, EPC를 수행하는 것은 마치 멀고 긴 험한 길로 비유되기도 한다. 그리고 모든 프로젝트는 항상 성공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간 평균적으로 매년 500억 달러의 자금이 정유공장 건설에 투입되었다. 전세계적으로 정유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생산능력을 늘리는 것은 언제나 필요한 일이다. 2017년에 이미 계약이 되었거나, 입찰 중인 프로젝트의 금액은 630억 달러에 달한다. 이중 아시아의 비중이 40%, 중동은 30%에 달한다. 전체 프로젝트의 70%가 아시아와 중동에 몰려 있다.
표 1. 2017년 계약 대기 및 입찰 중인 정유공장 프로젝트
대륙(지역) |
Country |
Project |
Amount ($Mill.) |
아시아 |
China |
Sinopec Tianjin New Refinery |
15,000 |
India |
Refinery Expansion (3) |
6,000 |
|
Indonesia |
Refinery Upgrade |
2,600 |
|
Pakistan |
Refinery Upgrade (3) |
2,200 |
|
Thailand |
CFP & CCR |
1,300 |
|
중동 |
Bahrain |
Sitra Refinery Expansion |
5,000 |
Iran |
Upgrade & Modernization |
4,000 |
|
Oman |
Duqm Refinery |
6,000 |
|
UAE |
POC & Reconstruction |
3,500 |
|
미주 |
USA |
Refinery Upgrade (3) & New Small Refineries (2) |
2,300 |
Sweden |
Hydrocracker |
1,000 |
|
유럽 |
Russia |
Modernization |
2,500 |
아프리카 |
Algeria |
Skikda Hydrocracker & New Refineries (3) |
7,000 |
South Africa |
CFP |
1,200 |
|
중앙아시아 |
Uzbekistan |
New Refinery |
2,200 |
기타 |
Others |
|
1,200 |
계 |
|
|
63,000 |
더구나 세계는 저유황 세계로 움직이고 있다. 앞으로도 수많은 정유공장에 대한 업그레이드와 확장이 필요하다. 정유공장이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가격이 싼 중질유를 사용하여 열분해(Delayed Coker), 수소화처리(Hydrotreatment), 유황회수(Sulphur Recovery), 수소첨가(Hydrogenation) 등의 시설을 추가로 갖춰야 한다. 투자는 끊임없이 발생 할 수 밖에 없다.
이제 세계적으로 정유공장이 들어설 곳은 3개 지역으로 집중되어 있다. 빠른 경제개발과 수요가 늘어나는 아시아, 원유자원과 자금력이 풍부한 중동, 그리고 개발할 기회가 많은 러시아/동유럽이다.
아시아
향후 대부분의 정유공장은 아시아에서 건설될 것이다. 중국은 단지 내수를 따라잡기 위해 수많은 정유공장을 지어댔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서비스 위주의 경제로 돌아서고 있는 중국에서 경유의 수요는 매우 느리게 증가하고 있는 반면에 휘발유 수요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중국은 한마디로 휘발유에 목말라 있다. 세계 2위의 인구대국 인도에서는 수많은 정유공장이 업그레이드되고 확장되고 있다. 새로운 대규모 정유공장도 필요하다. 이제 인도는 정유산업의 아시아지역 플레이어로 등장하고 있다.
중동
중동은 오래전부터 전세계의 정유 생산능력을 크게 늘려왔다. 원유를 안정적으로 값싸게 공급할 수 있다는 강점때문에, 2009년부터 초대형 수출형 신규 정유공장이 들어서고 있다. 사우디의 주베일, 얀부, 자잔에서는 일산 400,000배럴 규모의 정유공장 3개가, UAE에서는 417,000배럴의 루와이스 정유공장이 최근에 준공되었다. 쿠웨이트에서는 615,000배럴의 알주르 정유공장이 지어지고 있으며, 오만과 바레인에서는 대형 정유공장 프로젝트가 곧 계약될 예정이다. 특히 이란에서는 200억 달러 규모의 정유공장 현대화사업이 2017년과 2018년에 쏟아져 나온다. 중동은 다음 10년에도 최첨단 초대형 정유공장이 건설되는 유일한 곳이다.
러시아와 동유럽
지금 러시아와 동유럽에서는 정유공장 현대화사업이 진행 중이다. 전통적으로 러시아는 막대한 양의 원유를 수출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원유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정유제품의 수출을 원하고 있다. 이에 맞춰 정유공장 업그레이드 사업이 많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동유럽의 미래도 밝다. 새로운 정유공장 건설과 현대화사업을 위한 투자자와 EPC업체를 손짓하고 있다.
6. 맺으며
석유는 현재의 핵심 에너지 자원이다. 석유의 공급은 앞으로 100년은 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석유가 조만간 고갈될 것이라는 주장은 단지 상업적인 표현에 불과하다. 이를 반영하듯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유전을 개발하고 정유공장이 건설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돈이 정유공장 신설과 확장에 투자된다. 미래의 가장 큰 정유공장 프로젝트 시장은 이제 아시아와 중동이다.
한국의 빅5가 정유공장 프로젝트의 메이저 EPC플레이어 탑 11에 속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어느 나라에나 수많은 EPC업체와 건설업체가 있다. 그러나 한국의 EPC업체처럼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우리가 이 위치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선배들의 노력과 시행착오가 있었다.
이제 한국EPC업체들이 과감히 변화할 때다. 우리는 글로벌 플레이어다. 과거에 우리 업체들이 시공을 해외인력으로 바꿔 경쟁력을 갖췄듯이 우선적으로 엔지니어링과 건설관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글로벌 플레이어에 맞는 글로벌 관리 역량을 갖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글로벌 매니지먼트를 위한 조직으로 회사가 전부 변해야 한다. 모든 개인도 글로벌 경영의 한 가운데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선두주자와 후발주자에게는 각각의 전략이 있다. 중국과 인도업체의 시장진입과 한국타도를 향한 공세는 갈수록 거세진다. 이에 대해 외국 플레이어들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전략은 이미 가동되고 있다. 그들의 본사와 지역본부, 그리고 현장 조직은 다국적, 다인종, 다문화 임직원으로 오래전에 바꿨다.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고 성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정유공장 프로젝트에서 피와 땀을 흘려 이룩한 소중한 포지션을 효율적이며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는 현재 EPC분야에 몸 담고 있는 분들의 숙제로 남아있다. 끝.
(상기는 해외건설협회에서 발간하는 2017년 6월호 “K-BUILD저널 특집“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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