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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글로벌 육상 유전개발 프로젝트 동향 본문
2017 글로벌 육상 유전개발 프로젝트 동향
1. 빛이 있으라
18세기 전까지는 세상에 가로등이 없었다. 중세에는 저녁 식사가 끝나면 불을 꺼야 했다. 빛에 대한 인류의 열망은 먼저 고래 기름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석유를 발견하면서 빛의 혜택은 널리 퍼졌다. 당시 석유는 세계가 애타게 기다려 온, 인공 불빛을 만들어 내는 양질의 물질이었던 것이다.
석유의 개발은 고난과 우연, 그리고 행운의 연속선 상에서 이루어졌다. 엔지니어가 아닌 기차 승무원으로 일하다 은퇴한 에드윈 드레이크가 주인공이었다. 은행 융자가 끊길 위험과 무모한 짓이라는 평가 속에 철수 통보가 그에게 보내졌다. 하지만 편지를 받지 못한 그는 1859년 8월 27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타이터스빌 근처 지하 22미터 깊이의 유정에서 석유를 발견해낸다. 하루 35배럴의 석유를 뽑아내는 세계 최초의 유전개발 사업이었다. 그리고 이 1859년이 실질적인 현대식 석유시추의 원년이 됐다. 이 일을 계기로 본격적인 석유산업 시대의 막이 올랐다. 고래잡이는 자리를 잃었다.
처음엔 단지 등불을 켜기 위한 등유를 얻기 위해서 유전을 개발했다. 19세기말에 이루어진 전기의 공급은 석유회사들을 전부 도산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자동차에 사용되는 내연기관의 발명으로 상황은 극적으로 역전됐다. 이로써 석유의 수요가 등화용에서 자동차로 확장됐다. 또한 전쟁을 통해 석유는 승리를 향한 절대 필수적인 요소가 됐다. 이제는 세상이 계속 돌아가게 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양의 석유가 필요해졌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세계 도처에서 새로운 유전이 계속 발견되면서 석유는 폭발적인 수요 증가와 함께 경제와 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2. 유전 개발의 역사
미국에서는 1859년 최초의 유전개발 성공에 힘입어 수많은 굴착공사가 시작됐다. 1860년 미국의 하루 석유 생산량은 1,400배럴이었으나, 1861년에는 5,500배럴로 늘었다. 석유 열기는 미국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석유시추 원년으로부터 10년 후인 1869년에는 11,000배럴, 이어 20년 후인 1879년에는 55,000배럴이나 됐다. 미국은 1882년에 816만 배럴의 석유를 수출함으로써 세계 시장을 독점했다.
1889년 미국의 하루 석유 생산량은 99,000배럴이었으며, 석유시추 원년으로부터 40년 후인 1899년에는 156,000배럴로 11배이상 뛰었다. 1900년의 세계 하루 석유 생산량은 270,000배럴이었으며, 이중의 65%가 미국에서 생산됐다. 당시 펜실베니아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유전개발 사업이 벌어진 곳이었다.
미국의 유전개발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1901년 스핀들탑 언덕의 한 굴착정에서 검은 석유가 치솟아 올랐다. 하루 10만 배럴의 석유가 치솟는 것을 막는데 무려 9일이나 걸렸다. 이제는 텍사스에서 오일 붐이 일었다. 1906년 미국의 하루 생산량은 346,000배럴로 증가했다.
석유가 돈이 되자 유럽과 러시아도 유전개발 사업에 뛰어 들었다. 1879년 러시아가 카스피해 부근의 바쿠 유전을 개발했다. 당시 이곳 유전의 매장량은 세계 최대 규모였다. 1885년 영국의 로얄더치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서 기름을 발견했으며, 1897년에는 쉘이 보르네오에서 유전개발을 시작했다. 이들 두회사가 1907년에 제휴하여 로열더치쉘을 만들었다. 1908년 BP의 전신인 앵글로페르시안이 이란에서 기름을 발견했다. 1919년에는 휘발유가 등유의 수요를 앞지르고 석유 제품의 대표가 됐다.
3. 아라비아반도의 석유개발 역사
자연은 아랍 국가들에게 석유를 공평하게 나누어 주지 않았다.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 수천년 동안 거대한 농업 인구를 부양했던 이라크 외에는, 가장 인구 밀도가 낮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그 외의 페르시아만 국가들, 그리고 북아프리카의 알제리와 리비아에서 대규모 석유 매장량이 발견됐다. 그러나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예멘에서는 현지의 수요조차 충족시키지 못할 정도로 적은 양의 석유가 나올 뿐이었다.
미국과 유럽의 기업들은 석유가 나올 것 같은 세계 곳곳을 찾아 다녔다. 19세기 석유 개발업자들이 중동의 석유매장을 확신하게 된 근거는 구약성서 노아의 방주와 소돔과 고모라에 나오는 역청때문이었다. 어떤 기업들은 수년 동안 땅을 팠지만 석유 한 방울도 얻지 못했다. 그러다 1930년대에 서서히 석유 개발업자들이 대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스탠다드 오일은 아라비아반도에서 최초로 1932년에 바레인에서 석유를 발견했다. 칼텍스는 1938년에 세계 3대 유전으로 불리는 쿠웨이트의 부르간 유전을 찾아냈다. 8일 뒤 스탠다드 오일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동쪽에 있는 다란에서 4년간의 고생 끝에 첫 성공을 거뒀다. 이 사우디 유전은 즉시 하루 1,500배럴의 석유를 생산했고 1944년 회사이름을 아람코로 바꾸었다. 아람코는 드디어 1948년에 하루 평균 500만 배럴을 생산하는 지상 최대의 가와르 유전을 발견하고 1951년에 생산을 시작했다.
1900년 세계의 하루 석유 생산량은 27만배럴이었으나 50년만에 1천만 배럴로 37배나 커졌다. 1950년대에 석유는 연간 7%씩 증가할 정도로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자원이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의 가와르와 쿠웨이트의 부르간 유전 덕분에 1960년대까지의 확인 매장량은 무려 3배나 늘어났다. 아랍 산유국들은 방대한 석유 매장량을 기반으로 점점 더 큰 힘을 갖게 됐다. 1950년대와 1960년대를 거치면서 중동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유를 생산하는 지역이 됐다. 석유공급의 주도권은 완전히 중동으로 넘어갔다.
1960년에 중동 산유국들이 OPEC(석유수출기구)을 결성하면서 세계에 입김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산유국들의 유전개발 경쟁으로 1960년대의 석유 생산량은 하루 평균 3천1백만 배럴로 1950년 대비 3배이상이 늘었다. 1960년부터 1973년까지 OPEC은 석유 생산량을 연간 10%로 늘리면서 드디어 세계 공급량의 55%이상을 차지하게 됐다. 반면에 미국의 석유 생산량은 1970년에 하루 960만 배럴로 꼭지점에 도달했다. 중동이 세계 유전개발 사업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4. 유전개발 프로젝트란?
유전개발 프로젝트는 석유와 가스를 개발하고 생산하는 모든 시설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업스트림, 즉 상류에 위치하면서 석유산업의 기둥이 됐으며, 역사적으로도 이익이 가장 많이 나는 분야였다. 이 분야에 특화되어 기술력과 지적자본을 갖춘 핼리버튼, 베이커휴즈. 슐룸베르거, 웨더포드 등과 같은 유전 서비스업체들이 엔지니어링회사보다 더 효과적이며 성공적으로 일을 처리해왔다.
그러나 유전개발 사업은 프로세스 기술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정유공장과 같은 다운스트림보다 수행이 쉬우며 위험부담도 적었다. 이러한 이유로 다운스트림 분야의 EPC업체들이 더 많은 이익을 내고 성장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업스트림쪽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석유기업들 역시 유전개발 사업에 더 많은 기술 능력을 필요로 하게 되면서 다운스트림 EPC업체들을 선호해왔다.
주로 입찰에 나오는 유전개발 프로젝트는 생산량을 늘리거나 회수율을 증진시키기 위한 시설을 건설하는 일들이다. 세부적으로는 원유생산시설, 가스처리시설, 가스오일 분리시설, 회수증진시설, 압축 및 가압시설, 집하시설, 물 주입 및 처리시설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우리나라에는 기름이 나지 않는 관계로 한국EPC업체들은 유전개발 사업의 경험과 실적이 없는 상태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한국업체들은 정유공장이나 석유화학공장과 같은 다운스트림에서 경험을 쌓기 시작한 후에야 업스트림 시장으로 진입할 수 밖에 없었다.
(주: 이 게재물에서는 편의상 전체 오일/가스 프로젝트를 ① 육상 유전개발, ② 해상 유전개발, ③ LNG플랜트, ④ LNG터미널, ⑤ 정유공장, ⑥ 석유화학공장, ⑦ 파이프라인의 일곱 개로 나눴습니다. 따라서, 이 게재물에서 언급하는 육상 유전개발 프로젝트는 석유산업의 업스트림으로, LNG와 파이프라인은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5. 2000년 이후 지금까지의 유전개발 프로젝트 발주 현황
그림 1. 육상 유전개발 프로젝트의 연도별 글로벌 발주 금액 (2000년-2018년)
전 세계에 수많은 유전이 있으나, 대부분은 하루 생산량 2만 배럴 미만의 소규모 유전들이다. 하루 생산량 10만 배럴 이상의 대규모 유전들은 전체의 3%에 불과하다. 더구나 하루 30만 배럴 이상을 채굴할 수 있는 대형 유전들은 14개 밖에 없으며, 이중 60%는 중동에 몰려 있다.
2000년부터 2017년까지 지난 18년 동안 국제 경쟁입찰을 통해 EPC로 발주한 전 세계 유전개발 사업의 규모는 3,500억 달러며 중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52%에 달했다. 유전개발 사업에 위기가 닥친 것은 1986년도와 1998년에 벌어진 유가 하락이었다. 그러나 2005년부터 고유가 시대가 열리면서 중동에서는 수많은 프로젝트가 쏟아져 나왔다. 온통 사막뿐이며 태양이 이글거리는 중동이 전 세계 EPC업체들의 가장 큰 시장으로 떠올랐으며 명실상부한 진검 승부처로 바뀌었다.
1) 한국 EPC업체의 중동 플랜트 시장 탐색기 (2000년-2004년)
유가는 1990년대 말까지 15년간 낮은 수준을 유지하다 2000년에 와서야 20달러대로 올라섰다. 2001년 9/11사태에 이어, 2003년 미국에 의한 이라크 함락은 중동의 GCC 6개국에게 태평성대를 가져다 주었다. 사담 후세인이라는 골칫덩어리가 사라지고 유가도 2001년에 27달러로 바닥을 친 후 올라가기 시작했다. 오일머니에 힘입어 중동 산유국들의 경기는 호황국면으로 접어들었다.
1998년의 IMF사태로 혹독한 구조조정을 겪은 한국 EPC업체는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유럽과 일본이 독점하고 있는 중동 플랜트 시장에 뛰어 들었다. 한국의 빅5(삼성엔지니어링, 대림산업, GS건설, SK건설, 현대건설을 지칭)가 1990년대 말부터 아랍 산유국으로의 최초 진출에 성공했으나 아직은 소규모이며 탐색전에 불과했다.
이 기간 중, 전 세계에서 체결된 육상 유전개발 프로젝트의 계약금액은 325억 달러였으며 중동에서만 57%에 달하는 184억 달러가 계약됐다. 중동 국가별로는 이란이 75억 달러, UAE가 32억 달러, 사우디가 31억 달러, 카타르가 27억 달러, 오만 14억 달러 순으로 발주됐다. 북아프리카의 알제리에서 26억 달러, 리비아에서도 24억 달러의 프로젝트가 나왔다. 당시를 주름잡았던 메이저 EPC플레이어는 일본의 JGC, 이탈리아의 스남프로게티, 미국의 벡텔이었다.
일본의 JGC가 44억 달러를 계약하면서 선두 주자에 올라섰다. JGC는 카타르의 돌핀 가스플랜트 프로젝트를 16억 달러에 수주했다. 리비아에서는 웨스턴 리비아 가스 프로젝트의 NGL가스플랜트를 JGC와 테크니몽의 컨소시엄이 16억 달러에 수주하면서 기염을 토했다. 이탈리아의 스남프로게티는 사우디의 카티프 가스오일 분리시설을 5.5억 달러에 수주했다. 또한 스남프로게티는 카타르의 알칼리지 1단계 가스플랜트를 치요다와 연합하여 5억 달러에, 리비아의 가스플랜트를 ABB러머스 및 현대건설과 제휴하여 8억 달러에 계약했다. 초대형 프로젝트에 특히 강한 벡텔은 UAE에서 합산가스플랜트 확장사업을 15억 달러에 따냈다.
2000년-2004년은 한국 EPC업체에게는 중동 플랜트 시장의 탐색기였다. 이란을 제외한 중동에서 한국업체들은 2군에 속한 마이너 플레이어로 간주되었다. 발주처와 유럽/일본의 EPC업체들은 한국을 단지 건설회사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미국의 이란 제재로 한국업체에게 기회로 다가온 이란에서만 현대건설이 사우스파 4, 5번의 가스처리시설을 15억 달러에, GS건설과 현지 OIEC컨소시엄이 사우스파 9, 10번을 16억 달러에, 도요, JGC, 대림산업, 그리고 현지 IDRO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사우스파 6, 7, 8번의 가스플랜트를 13억 달러에 수주하는 강세를 보였다.
2) 한국 EPC업체의 중동 플랜트 시장 진입기 (2005년-2008년)
바야흐로 고유가 시대였다. 국제 유가는 사상 최고지를 경신하면서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었다. 여기에 덧붙여 중국과 인도에서 수입하는 물량이 크게 늘어났으며, 정유와 석유화학산업에 직접 진출한 중동 국가들도 석유 수요를 크게 증가시켰다. 중동 산유국에는 돈이 흘러 넘쳤다. 그야말로 2005년의 중동은 호황 그 자체였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의 4년 동안 전 세계에서 체결된 유전개발 사업의 계약금액은 618억 달러였으며, 중동이 56%의 비중을 차지했다. 이 기간 중동에서의 연 평균 발주금액은 88억 달러로 탐색기 대비 2.4배나 늘어났다. 이탈리아의 스남프로게티가 총 121억 달러를 수주하면서 전성기를 일궈냈다. 그 뒤를 이어 테크닙이 34억 달러, 벡텔이 26억 달러, JGC와 페트로팩이 23억 달러의 수주고를 올렸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가 중동 전체 물량의 42%인 148억 달러 규모의 유전개발 프로젝트를 발주했다. AFK가스전개발 프로젝트는 패스트트랙으로 진행하기 위해 FEED를 포함한 EPC방식 입찰로 실시됐으며 벡텔, 테크닙, 플루어, 스남프로게티, SNC라발린의 5개사만이 초청받았다. 패키지 1번 가스오일분리시설에 대한 입찰에서 스남프로게티가 12억 달러에 계약했다. 패키지 2번의 가스플랜트 입찰에서는 벡텔과 테크닙이 컨소시엄을 구성, 20억 달러에 코스트플러스 방식으로 계약했으나 후에 럼섬으로 전환하면서 계약액은 28억 달러까지 올라갔다.
세계 최대의 하위야 NGL프로젝트 입찰에서 JGC가 NGL회수플랜트를 10억 달러에, 스남프로게티가 가스처리 플랜트를 8억 달러에 수주했다. 그리고 테크니카스 리유니다스가 가스플랜트 확장사업의 2개 패키지를 7.7억 달러에 가져갔다. 5개 패키지로 나누어 발주된 쿠라이스 유전개발 확장사업 입찰에서 스남프로게티를 2006년에 인수한 사이펨이 가스오일분리시설, 동력 및 간접시설, 가스플랜트 확장의 3개 패키지를 30억 달러에 수주했다. 그리고 현대건설과 포스터휠러 컨소시엄이 중앙 원유처리시설을 8억 달러에 따냈으며, SNC라발린이 마지막 패키지인 물 주입시설을 4억 달러에 가져갔다.
마니파 유전개발 입찰에서는 한국업체에게도 문호가 개방됐다. 가스처리시설을 사이펨이 8억 달러에, 동력시설은 JGC가 8억 달러에, 발전소는 테크니카스 리유니다스가 5억 달러에 가져갔다. GS건설이 마니파 프로젝트 중 쿠르사니야 가스처리시설을 5억 달러에 수주하면서 사우디 처녀 진출에 성공했다.
중동 국가 중 쿠웨이트만이 유일한 한국 EPC업체들의 독무대였다. 1994년 미국과 일본 업체들이 떠난 후 SK건설, 현대건설, GS건설, 대림산업, 현대중공업의 5개사가 황무지 시장을 지키고 있었다. 드디어 2005년 쿠웨이트에서 기존의 7개 원유집하시설과 2개의 가압장을 업그레이드하는 사상 최대의 대형 사업이 발주됐다. A패키지는 페트로팩이 6.8억 달러에, B패키지는 SK건설이 12억 달러에 수주했다. 페트로팩이 2000년에 쿠웨이트에 상륙한 이후, 가장 성공적으로 수주한 프로젝트로 기록됐으며, 다른 중동 국가에서도 초대형 프로젝트를 연속 수주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어 원유수출설비 프로젝트를 현대중공업이 12.5억 달러에 수주하면서 쿠웨이트가 거대 시장으로 변했다. 원유생산능력을 확대하려는 쿠웨이트 정책에 따라 2007년 원유집하시설 24번을 SK건설이 6.2억 달러에, 2008년 가스가압장 160번을 사이펨이 6.7 억 달러에 수주하면서 호황을 이어갔다. 반면 침입자도 나타났다. 스페인의 테크니카스 리유니다스가 GC-28번 확장사업을 1억 달러에 수주하면서 한국업체와의 치열한 경쟁을 예고했다.
UAE는 한국 업체의 참여가 가장 저조한 곳이었다. 2005년의 대표적인 프로젝트인 OGD-3/AGD-2 프로젝트의 가스회수와 가스처리시설 2개 패키지를 벡텔이 27억 달러에 계약했으며, 가스생산시설은 스남프로게티가 14억 불에 수주했다. 이어 나온 합산 가스콤플렉스 확장 입찰에서는 플루어가 CCC를 시공사로 잡아 10억 달러에 수주했다. 그러나 플루어는 여기에서 큰 손해를 보면서 한동안 중동지역 EPC입찰에 불참하는 이유가 됐다. OAG프로젝트의 압축 및 탈수시설 입찰에서는 테크닙이 페트로팩, NPCC, 테크니카스 리유니다스, L&T와 도쌀 등의 치열한 경쟁 속에 6억 달러에 수주했다. 인도 인력으로 무장한 테크닙 아부다비가 새롭게 등장했다.
2005년 오만의 하르윌 원유회수증진시설과 알카우더 가스플랜트의 2개 프로젝트를 페트로팩이 12억 달러에 수주하면서 지역 패권자로 자리 잡았다. 2007년에는 사이라울 가스처리플랜트를 테크니카스 리유니다스가 5.5억달러에 수주했다. 놀랍게도 인도의 도쌀이 페트로팩, 테크니카스 리유니다스, SNC라발린 등의 경쟁을 꺾고 무카이즈나 원유생산시설과 카른 알마 원유회수증진시설의 2개 프로젝트를 15.5억 달러에 따냈다. 인도업체가 본격적으로 중동의 EPC무대에 등장했다. 카타르에서는 알칼리지 2단계 가스처리플랜트를 치요다와 테크닙의 컨소시엄이 16억 달러에 수주했다.
중동 외의 큰 시장인 알제리에서도 많은 프로젝트가 나왔다. 하시 메싸우드 원유처리시설과 LPG플랜트의 2개 프로젝트를 사이펨이 29억 달러에 수주했다. JGC는 로데누스 원유 처리 및 압축시설 프로젝트를 5억 달러에 따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카샤간 원유 및 가스처리 플랜트를 플루어의 컨소시엄이 12억 달러에, 카라차가나크 가스플랜트를 페트로팩이 5억 달러에 수주했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GCC 6개국에서 체결한 오일/가스의 전체 플랜트 프로젝트 계약금액은 1,243억 달러로 유전개발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7%였다. 이 기간은 한국 EPC업체가 중동 플랜트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는 시기로 시장 점유율은 19%로 높아졌다. 한국의 빅5 모두가 두각을 나타내던 시기였다.
그림 2. 시기별 EPC플레이어 TOP 10 (육상 유전개발 사업 분야)
3) 한국 EPC업체의 중동 플랜트 시장 전성기 (2009년-2013년)
2008년 90달러대까지 오르던 유가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잠깐 주춤했다가 2011년에 드디어 100달러대로 진입했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이 기간 동안 전 세계에서 체결된 유전개발 사업의 계약금액은 1,317억 달러였다. 중동에서는 54%에 해당하는 712억 달러가 계약됐다. 중동 역사상 가장 높은 연 평균 142억 달러가 유전개발 프로젝트에 쓰여진 것이다. 세계 각국의 수많은 건설업체들이 사막의 오랜 친구들인 양 중동으로 몰려왔다. 열사만큼이나 비즈니스 열기가 뜨거웠던 중동이었다.
이 기간은 한국 EPC업체가 가장 역동적으로 활동했던 그러나 너무나 공격적이었던 시기였다. 한국의 저돌성에 유럽이 깜짝 놀라 가격을 낮추는데 주력하게 됐다. 업스트림 분야에서 가장 강한 페트로팩이 드디어 유전개발 사업분야에서 170억 달러를 수주하면서 1위에 올랐다. 그리고 삼성엔지니어링이 63억 달러, 사이펨이 61억 달러, 현대건설이 49억 달러, SK건설이 38억 달러의 계약고를 올리면서 그 뒤를 따랐다.
2009년 UAE의 가스통합개발 프로젝트(IGD) 중 무려 100억 불에 달하는 5개 패키지의 입찰결과가 발표됐다. 전체 5개 패키지 중 현대건설, GS건설, 현대중공업이 3개 패키지에서 39억 불의 승전고를 울렸다. 특히 패키지 1번(합산 5 가스플랜트)에서는 JGC와 테크니몽 컨소시엄이 47억 달러를 계약했다. 패키지 2번(동력 및 간접시설)에서는 현대건설이 17억 달러에 수주했다. 패키지 3번(루와이스 No. 4 NGL 플랜트)은 페트로팩과 GS건설 컨소시엄이 22억 달러에 따냈다.
파트너인 코노코필립스의 탈퇴에도 불구하고 100억 달러 규모의 샤 가스전 개발 프로젝트가 2010년에 계약이 체결됐다. 사이펨이 한국업체와의 치열한 경쟁속에 가스처리시설과 유황회수시설의 2개 패키지를 34억 달러에 수주하면서 그 저력을 다시 한번 만방에 과시했다. 동력 및 간접시설에서는 삼성엔지어링이 15억 달러에 수주했다. 가스집약시설에서는 테크니카스 리유니다스와 펀지로이드의 컨소시엄이 5억 달러에 계약했다.
UAE에 본사를 둔 페트로팩은 루와이스 NGL플랜트 외에도 SAS 유전개발 패키지를 23억 달러에, 밥가스압축시설 확장사업을 5억 달러에, 업퍼자쿰 원유생산시설 프로젝트를 10억 달러에, 밥합산 해수주입시설을 2억 달러에 연거푸 수주하면서 아부다비를 자기 안 마당 마냥 훨훨 날아 다녔다. 인도의 대표주자가 된 도쌀은 합산 유황처리시설을 4.8억 달러에,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시설을 5억 달러에 수주하면서 한국업체의 킬러로 등장했다.
2011년 사우디에서 총 8개 패키지에 달하는 2개의 유전개발 프로젝트를 한국업체가 저가로 싹쓸이 하는 일이 벌어졌다. 와싯 가스전개발 프로젝트의 3개 패키지를 SK건설이 한국, 유럽, 일본, 중국 등이 참여한 치열한 경쟁 속에서 19억 달러에 안았다. 삼성엔지니어링도 와싯 프로젝트의 4.6억 달러짜리 열병합발전소 수주에 이어. 샤이바 NGL프로젝트의 4개 패키지 모두를 28억 달러에 수주했다. 특히 샤이바 NGL프로젝트 입찰에는 한국의 빅 5 모두가 참여한 순수한 우리끼리의 싸움이었다.
이 기간 쿠웨이트에서는 SK건설이 BS-132와 변전소 현대화사업의 2개 프로젝트를 11억 달러에, GS건설이 와라 프로젝트를 5.5억 달러에, 대림산업이 텔레미트리 프로젝트를 2억 달러에 수주했다. 외국업체로는 유일한 터줏대감인 사이펨이 BS-171프로젝트를 9억 달러에, 페트로팩이 해수주입시설과 파워 네트워크의 2개 프로젝트를 6.3억 달러에 각각 가져갔다.
카타르에서는 JGC가 바르잔 가스플랜트를 17억 달러에 수주했으며, 페트로팩이 산성가스제거플랜트를 6억 달러에 따냈다. 가스압축시설 확장 프로젝트 입찰에서는 L&T가 GS건설, 사이펨, 테크닙 등을 제치고 2.5억 달러에 가져가는 일이 벌어졌다.
이라크의 업스트림 분야 경쟁에서는 삼성엔지니어링과 페트로팩의 2파전 양상으로 벌어졌다. 페트로팩이 마즈눈 원유생산시설 확장사업과 바드라 유전개발 중앙처리시설의 2개 패키지를 18억 달러에 계약했다. 삼성엔지니어링도 바드라 유전개발 가스오일분리시설과 웨스트쿠르나 유전개발 중앙처리시설의 2개 프로젝트를 19억 달러에 수주했다.
116억 달러의 프로젝트가 발주된 알제리에서는 사이펨, JGC, SNC라발린, 페트로팩, 테크니카스 리유니다스의 5개 회사가 케이크를 나누고 있었다. 페트로팩이 엘메르크 중앙처리시설, 티미몬 가스전 중앙처리시설, 알라르 가스전사업의 3개 프로젝트를 44억 달러에 잘라 갔다. JGC는 가시 토울리 가스플랜트, 인 아메나스 가스플랜트확장 및 비르세바 유전개발의 3개 프로젝트를 24억 달러에 가져갔다. 그리고 테크니카스 리유니다스는 투아트 가스플랜트를 25억 달러에, SNC라발린은 가스플랜트 2개를 22억 달러에, 사이펨은 MLE유전 가스플랜트를 18억 달러에 각각 따갔다.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세계 최대의 육상 가스전인 갈키니쉬 가스전개발 프로젝트가 발주됐으며 3개의 가스플랜트를 페트로팩이 34억 달러에, 중국의 CNPC가 31억 달러에, 현대엔지니어링이 14억 달러에 각각 수주했다.
수주 금액으로만 봤을 때 2009년-2013년은 한국 EPC업체의 전성기였다. 참고로 이 기간 중동 GCC 6개국에서 체결한 모든 플랜트 프로젝트(육상 및 해상 유전개발, 정유 및 석유화학공장, LNG, 파이프라인 등을 포함)의 계약금액은 1,500억 달러에 달했다. 이 때 한국 빅5의 중동시장 점유율은 세계가 놀란 48%였다. 한국 EPC업체가 유럽과 일본의 선진 EPC업체들을 기술력을 꺾은 것만 같았다. 이보다 더 좋은 시절은 없었건 것처럼 보였다.
4) 한국 EPC업체의 중동 플랜트 시장 쇠락기 (2014년-2017년)
2014년 말부터 유가가 가파르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100달러가 넘었던 유가가 2016년 초에는 26달러까지 떨어졌다. 석유의 공급과잉, 미국의 셰일오일 개발, 중국의 경기 둔화, 달러화 강세 등이 겹친 결과였다. 이 기간 동안 전 세계에서 유전개발 사업으로 발주한 금액은 910억 달러였으며 중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49%였다. 사우디에서 163억 달러, 쿠웨이트에서 111억 달러, UAE에서 96억 달러, 알제리에서 74억 달러가 발주되면서 아직 시장은 살아 있었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바뀌었다.
사우디에서는 마스터가스시스템(MGS)의 1단계와 2단계 가스압축시설 프로젝트 2개를 중국의 셉코가 21억 달러에 수주했으며, 이를 확장하는 가스압축시설은 도쌀이 17억 달러에 가져갔다. 파드힐리 프로젝트 중 가스플랜트와 동력시설의 2개 패키지를 테크니카스 리유니다스가 30억 달러에, 유황회수시설은 페트로팩이 17억달러에 수주했다. 또한 쿠라이스 유전확장 프로젝트의 중앙처리시설을 사이펨이 16억 달러에 따냈다. 2016년도의 마지막 육상 업스트림 프로젝트인 우스마니야 가스플랜트 입찰에서 현대건설이 7.3억 달러에 수주하면서 한국의 체면을 유지했다.
쿠웨이트에서 발주된 유전개발 사업분야의 입찰에서 한국EPC업체가 전패하면서 완전히 도태될 지경으로 몰렸다. 페트로팩이 GC-29를 7억 달러에, L&T가 GC-30을 8.5억 달러에, 도쌀이 GC-31과 방출수처리시설의 2개 프로젝트를 17.6억 달러에 가져갔다. 한국업체로는 SK건설, 대림산업, 현대중공업이 전투에 나섰지만 대책없이 무너졌다. 곧 이어 나온 KOC 역사상 사상 가장 큰 로우어파스 중유생산처리시설 입찰에서 페트로팩과 CCC의 컨소시엄이 한국업체로 구성된 3개의 컨소시엄을 꺾고 무려 42억 달러에 수주하는 쾌거를 올렸다. 2017년 7월에 마감된 GC-32프로젝트 입찰에서도 페트로팩이 13억 달러의 최저가를 제출했다. 페트로팩의 가격은 2위의 SK건설보다는 3% 쌌다. 이제는 한국 EPC업체의 입찰가격이 사이펨이나 페트로팩의 것보다 높아도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인도 대륙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오만은 페트로팩과 인도업체들의 독무대가 됐다. 카잔 치밀가스전의 중앙처리시설 프로젝트를 페트로팩과 CCC 컨소시엄이 12억 달러에 수주했다. 이발 쿠프 유전 원유회수증진시설과 살랄라 LPG플랜트의 2개 프로젝트는 또 페트로팩이 15억 달러에, 사이 나하이다 가스압축시설 2단계는 L&T가 4억 달러에 가져갔다.
UAE에서 발주된 NEB 3단계 프로젝트 중 루마이타-샤나엘 원유처리 플랜트를 GS건설과 도쌀의 컨소시엄이 14.4억 달러에, 또한 알다비야 원유생산시설을 테크니몽이 23억 달러에 계약했다. 2015년에는 IGD확장 프로젝트 중 가스탈수소 및 압축시설 패키지를 테크니몽의 컨소시엄이 5억 달러에, 합산 가스처리플랜트 개선사업을 테크니카스 리유니다스가 7억 달러에 수주했다. 중국의 CPECC는 멘더 유전개발 프로젝트를 인도업체들과의 경쟁 속에서 3억 달러에 따내며 가까운 미래의 다크호스임을 과시했다.
알제리에서는 삼성엔지니어링이 티미문 가스플랜트를 10억 달러에, 페트로팩이 레간 가스전개발 프로젝트를 10억 달러에, 도쌀이 하시 메싸우드 가스압축시설 프로젝트를 6억 달러에 수주했다. 2016년에는 JGC가 하씨 메싸우드 원유생산시설과 하씨 르멜 가스전의 2개 확장 프로젝트를 14억 달러에 따냈다. 2017년에는 도쌀이 하씨 메싸우드 가스오일 분리시설 프로젝트를 11억 달러에 수주하면서 국제적인 메이저 EPC업체로 자리매김했다.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에서는 현대엔지니어링의 컨소시엄이 칸딤가스 플랜트를 26.5억 달러에 수주했다.
그 동안 소문으로만 나돌던 한국 EPC업체의 대규모 손실이 2013년 초에 공식 발표됐다. 2014년부터 한국 EPC업체는 쇠락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한때는 한국업체의 안마당이었던 쿠웨이트에서조차 한국의 빅5는 전멸했으며, 나머지 중동 국가에서도 그 실적은 초라했다. 한국은 저력과 의욕을 상실했으며, 그 자리를 페트로팩, 도쌀, 테크니카스 리유니다스 등이 재빠르게 잠식했다. 인도와 중국의 EPC업체들도 속속 시장에 진입했다. 이제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어디를 가나 페트로팩 깃발이 나부꼈으며 인도인으로 넘쳤다.
6. 육상 유전개발 프로젝트의 EPC플레이어들
그림 3. EPC업체별 육상 유전개발 프로젝트 수주실적 (2000년-2017년)
원래부터 유전은 미국과 유럽업체에 의해 개발되었기에, 그 프로젝트 역시 미국과 유럽의 엔지니어링사에 의해 수행됐다. 1960년대에는 일본업체가 정유공장에서의 수행 경험을 바탕으로 유전개발 사업에 가담했다. 그후 1970년대부터 이들이 세계 EPC시장을 독점하기 시작했으며 1990년대까지 이어져왔다.
한국업체가 본격적으로 EPC분야에 진입하기 이전인 1990년대 말 이전만해도 중동과 북아프리카에는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에서 몰려온 22개사가 활동하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벡텔, 플루어, KBR, ABB러머스글로벌, 파슨스, 스톤앤웹스터 포스터휠러, 제이콥스, 레이시온 등의 9개 업체가 으르렁거리고 있었으며, 유럽의 전통 강호인 스남프로게티, 테크닙, 테크니몽, 린데, 스토크, 크배너, 루르기, 크룹우데 등의 8개사도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치요다, JGC, 도요, 미쓰이엔지니어링, 미쓰비시중공업 등의 5개사가 아시아와 중동을 기반으로 적극 활동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이익을 내기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2000년 대 후반으로 가면서 이 22개사 중 반 이상은 사라졌다.
2000년대 한국업체가 육상 유전개발사업 분야에 뛰어 들면서 진입장벽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국업체의 중동플랜트 시장 탐색기라 여겨지는 2000년부터 2004년까지는 치요다, JGC, 도요의 일본 엔지니어링 3사, 그리고 프랑스의 테크닙과 이탈리아의 스남프로게티가 완벽하게 전체 플랜트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2005년부터 2008년사이 한국 빅5의 본격적인 중동 진출이 이루어졌다. 사이펨, 테크닙, 벡텔 JGC 등이 선두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 EPC업체가 중동 플랜트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로 위협적이지 않았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진행 중인 2009년부터 중동은 석유산업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2013년까지 수주 실적으로만 보면 한국업체의 전성기였다. 육상 유전개발 사업분야에서는 페트로팩과 JGC가 1, 2위를 하고 삼성엔지니어링이 3위에 올라섰다. 현대건설과 SK건설도 5위와 6위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업체가 다수의 초대형 프로젝트를 싹쓸이 하면서 샴페인을 터뜨렸지만 곧 바로 위기가 발생했다.
무리하게 저가 수주한 사우디 와싯 가스전 개발사업과 샤이바 NGL프로젝트의 손해 규모가 밝혀지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실제로는 2009년부터 한국업체가 중동에서 수주한 30여개의 프로젝트가 완공을 앞두고 대부분 적자로 반전하게 된 것이었다. 한국 EPC업체의 쇠락은 2014년부터 중동의 모든 국가에서 시작됐다. 2014년과 2015년에 한국업체들은 가장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페트로팩과 테크니카스 리유니다스, 그리고 도쌀은 사상 최대 규모의 신규 수주와 매출을 기록하며 호황을 만끽했다.
7. 인도인으로 무장한 유럽의 선진 EPC업체들
플랜트 분야에 종사하는 글로벌 EPC업체들의 승부처는 단연코 산유국이 몰려 있는 중동이다. 원래부터 이 지역의 터줏대감은 유럽이었다. 2000년부터 2017년까지 유럽 EPC업체들은 육상 유전개발 프로젝트 분야에서 실제로 발주된 금액의 41%를 가져갔다. 미국을 포함시키면 그 비중은 50%에 달했다. 그러나 한국 EPC업체들이 2000년대 중반부터 공격적으로 중동 시장에 진입하면서 유럽업체들은 경고등을 켜고 생존 전략을 찾기 시작했다. 그들은 전략을 강구했으며 변신했다.
중동에서 활동하는 유럽의 선진 EPC업체들은 이제 진정한 유럽업체들이 아니다. 그들은 엄밀하게 말해 인도업체와 별 다를 바 없다.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였지만, 18세기부터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포르투갈 등 유럽 열강의 식민주의 주도권 경쟁이 벌어진 곳이었다. 역사가 말해주듯 유럽은 글로벌 경영에 익숙했기에 인도를 활용할 줄 알았다.
육상 유전개발 프로젝트의 수주 실적 1위인 페트로팩은 도대체 어느 나라의 회사인가? 페트로팩의 주소지는 런던으로 되어 있지만 EPC본사는 UAE의 샤자에 있다. 대주주인 회장은 시리아계 영국인이지만, 상당수의 임원과 대부분의 직원은 인도인이다. 결국 모든 EPC업무를 인도인이 직접 수행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 회사가 영국기업인가? 인도회사와 전혀 다르지 않다.
사이펨은 이탈리아 회사다. 그러나, 중동에서 수주한 모든 프로젝트에 대한 설계, 구매, 건설의 모든 EPC영역을 사이펨의 인도회사에서 직접 소화한다. 사이펨의 중동 건설현장에 이탈리아인은 2-3명뿐이다. 건설관리를 책임질 나머지 90명 정도는 대부분 인도인이다. 또 다른 이탈리아 회사인 테크니몽도 마찬가지다. 테크니몽은 20년전부터 인도에 엔지니어링센터를 설립하여 오랜 기간의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안정화에 성공했다. 테크니몽은 중동에서 수주한 모든 프로젝트를 아예 인도에서 수행한다. 사이펨과 테크니몽의 견적과 수행금액은 이제 인도업체와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낮아졌다.
테크닙은 프랑스 회사다. 그러나 중동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프로젝트를 테크닙 아부다비에서 수행한다. 테크닙 아부다비에는 약 1,500여명의 인원이 EPC 전분야를 소화한다. 테크닙 아부다비 조직 내의 프랑스인은 경영진 2-3명뿐이고 나머지는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아랍인 등으로 채워져 있다.
최근에 EPC업계의 강자로 등장한 도쌀의 본사는 인도가 아니라 두바이에 있다. 2003년 도쌀은 프로젝트를 쫓아 중동으로 본사를 과감히 옮겼다. 당연히 도쌀의 모든 임직원은 인도인이다. 일본의 대표주자인 JGC는 전형적인 글로벌 회사다. 본사는 일본에 있지만 대부분의 설계를 필리핀 오피스에서 수행한다. JGC 본사에는 수많은 글로벌 직원들이 일하고 있으며 영어로 소통하고 있다. 현장도 마찬가지로 인도, 필리핀, 한국 등에서 온 인력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 옛날 중동은 인도의 속국이나 마찬가지였다. 석유가 모든 것을 바꿨지만, 지금 중동은 인도인이 없으면 굴러가지 못한다. 특히 인도인이 건설과 관련된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다. 발주처의 엔지니어나 감독관들도 인도인이 대부분이며, 현지 건설회사나 제작업체, 그리고 벤더들도 인도인이 주류다. 인도인을 고용하고 프로젝트에 투입하는 것은 인건비가 싸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효율적이며 최대의 효과를 얻기 때문이다.
8. 어떻게 해야 할까?
유전개발 사업은 유가에 따라 좌우되기도 하지만, 꾸준히 대규모로 발주되고 있다. 글로벌 EPC업체들은 여기에서 돈을 벌었다. 반대로 한국 EPC업체가 크게 손해를 본 것은 정유공장이 아니라 유전개발 프로젝트였다. 사우디의 와싯 가스전개발과 샤이바 NGL프로젝트가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가 실패한 이유는 아군끼리의 처절한 싸움을 통한 저가 수주, 그리고 또 하나, 근본적으로 글로벌 경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업체는 해외에서도 우리끼리의 인적자원으로, 우리 말로 소통하고, 우리 음식을 먹으며 우리 방식으로 일한다. 본사와 현장의 핵심 위치에 외국인 임원과 직원이 없다면, 또한 선진 EPC업체를 벤치마킹으로 글로벌기업이 되고자 하는 열망과 계획이 없다면, 아직 글로벌 플레이어가 아니다. 그냥 중간 사이즈의 EPC업체다. 지금과 같은 환경과 시장에서는 중간 사이즈 업체는 존재하기 어렵다. 역사적으로 이들은 글로벌 기업에 잡혀 먹었거나 소리소문없이 서서히 사라졌다. 한국 플랜트 EPC업체에게는 두 갈래의 길이 놓여있다. 글로벌 기업이 될 것인가, 아니면 그냥 안주할 것인가?
모든 유럽과 일본업체가 EPC수행을 장소와 인종, 그리고 문화에 관계없이 글로벌화시켰다. 반면에 한국업체들은 글로벌 경영을 하지 못했거나 몰랐으며 싫어했다. 이것 때문에 중동을 포함한 세계 EPC시장에서 한국업체는 성공하지 못했다. 더구나 최근에 벌어지는 입찰 경쟁에서도 한국업체들의 가격은 유럽보다 높게 나오고 있다. 마의 5%라는 벽이 생겼다.
글로벌로 갈 수 있는 첫 단추는 국적과 관계없이 다른 업체와 동맹을 맺거나 합작, 아니면 인수하는 것이다. 글로벌기업에게는 새로운 수준의 복잡함과 다양함을 요구한다. 글로벌경영을 하기 위해서는 조직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실제로 한국 EPC업체 모두는 오래전부터 글로벌화를 외쳤지만, 글로벌경영을 하지 않았거나 못했다.
한국에는 플랜트 EPC를 수행할 수 있는 업체가 14개나 된다. 이들은 설립 목적과 연혁에 따라 EPC, 엔지니어링, 건설, 중공업, 그리고 그룹 자회사의 5개 군으로 나눌 수 있으며 상호간 협력과 합병의 대상이다. 인구 대국 인도와 중국, 그리고 아시아에는 보석과 같은 유능한 엔지니어링회사와 건설업체들이 숨어 있다. 기본설계만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작은 규모의 엔지니어링회사도 찾아보면 많다. 문화적으로 섞이지 못하는 인도와 중국을 우리 기업 누군가가 오거나이징하면서 경영할 수도 있다. 이 모두가 진정한 글로벌기업으로 가기 위한 동맹과 합작 그리고 인수합병의 대상이며 전략의 기반이다. 글로벌기업이 되기 위한 이런 전략은 우리가 중동 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한 10년전에 꼭 해야만 될 일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위기는 있어왔고 상황은 변해왔다. 희망을 찾아야 한다. 우리에겐 아직 악조건 속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한 수많은 전사들이 남아 있다.
(상기는 해외건설협회에서 발간하는 2017년 8월호 “K-BUILD저널 특집 연재“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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