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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의 소굴에서 중동 플랜트 건설시장의 중심지로
-2022년 아랍에미리트 오일/가스 플랜트 프로젝트 동향-
조성환
플랜트 프로젝트 컨설팅 대표
1. 해적의 나라
약 4백년 전 지금의 아랍에미리트 지역은 해적들의 나라였다. 17세기-19세기 사이 해적의 소굴이라는 오명으로 이 지역이 서방에 알려졌다. 인도를 왕래하는 영국 상선들이 해적들로부터 공격당하자, 해적질에서 출발한 대영제국 해군이 이들을 소탕하면서 이곳 통치자들과 휴전을 맺었다. 영국은 1892년 오늘날의 아랍에미리트 해안선인 해적 해안이라고 불리는 곳에 보호령을 설치했다. 그래서 그곳의 이름을 트루셜 스테이츠, 즉 휴전 국가연합이라 불렀다. 하지만 영국은 모래사막뿐인 이곳에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림-1. 트루셜 스테이츠(아랍에미리트의 옛 이름)
1960년대 이 지역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영국의 태도가 변했다. 영국은 원유 채굴권을 확보하기 위해 에미리트를 구성하는 9개 부족 간의 영토 경계선을 정해야 했다. 하지만 여러 부족 통치자들의 입장이 엇갈려 바레인과 카타르가 연합국 결성에 반발해 빠져나갔다. 결국 7개 부족이 아랍에미리트 연합국을 구성했다. 이 연합국은 150년 동안 영국 보호령으로 있다가, 석유의 발견 덕분에 드디어 1971년 12월 1일 아랍에미리트(UAE)라는 이름의 새로운 나라로 탄생했다.
해적 해안으로 불렸던 이곳은 석유가 발견되기 이전에는 두바이를 중심으로 밀수 위주의 중개무역과 소규모 어업 및 진주 채취가 전부인 가난한 나라였다. 그러나 1962년 움 샤이프(Umm Shaif) 해상 유전에서 최초의 석유 수출로 달러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7개 부족국가 중 가장 가난했던 아부다비가 졸지에 가장 부유한 곳으로 변했다.
석유 생산을 바탕으로 아랍에미리트 경제는 급속한 발전을 이룩했다. 60년이 지난 지금, 석유 산업이 전체 GDP의 60%, 재정수입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옛날 세금의 피난처와 해적의 금융 센터였던 두바이는 세계 최대의 금시장과 국제금융의 중심지로 탈바꿈했다. 해적 해안은 고층 건물로 가득한 화려한 해변 도시로 변했다. 2022년의 1인당 GDP는 5만 달러를 기록하여 세계 최고의 소득수준을 유지하는 부자 나라 중의 하나가 되었다.
2. 중동 플랜트 건설의 중심지로
아랍에미리트는 주변의 다른 중동 국가들보다 20년 정도 늦은 1958년에 처음으로 석유를 발견했다. 그러나, 1962년에야 상업적 규모인 아부다비의 움 샤이프 해상 유전이 발견되었고, 그 다음 해에는 머반(Murban) 사막에서 대규모 석유가 나왔다.
이렇게 아랍에미리트는 1971년에 독립하자마자 하루에 평균 9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면서 세계 생산량의 1.8%를 차지하는 부자나라로 변신하게 된다. 아부다비는 전 세계 6위의 매장량을 지니고 있는 매우 우량한 유전지대로 배럴당 평균 생산단가가 전 세계 평균의 1/10수준이다. 이러한 이유로 당시 유전은 미국, 영국 등 서방 소수 석유메이저들이 소유하고 있었다.
독립이 되자, 아랍에미리트에서는 본격적인 플랜트 건설공사가 시작되었다. 아랍에미리트 최초의 움 알나르(Umm Al Narr) 정유공장은 1976년에, 두 번째인 루와이스 정유공장은 1978년에 각각 건설이 시작되었으며, 이탈리아의 스남프로게티(지금의 사이펨)가 맡았다. 1996년 두바이의 제벨알리에도 정유공장이 들어섰으며, 프랑스의 테크닙이 가져갔다. 시간이 가면서 기존의 정유공장은 빠르게 확장을 거듭했다. 석유화학의 꽃인 에틸렌 플랜트도 1998년 벡텔과 린데의 컨소시엄에 의해 루와이스에서 건설이 시작되었으며, 그 다운스트림은 계속 뻗어 나갔다. 오일머니의 유혹에 끌려 아랍에미리트의 사막과 바다에서는 수많은 유전개발 사업이 발주되었다.
당연히 이곳의 터줏대감은 미국과 유럽이었다. 그리고 일본도 1950년에서 1960년대까지의 자국내 전후 재건사업을 마치고 1970년대부터는 중동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벡텔, 플루어, 켈로그, 브라운앤루트, 스톤앤웹스터, 러머스 등이, 유럽에서는 스남프로게티, 테크닙, 린데 등이, 일본에서는 JGC, 치요다, 도요엔지니어링 등이 아랍에미리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플랜트 프로젝트를 쓸어 담기 바빴다. 그들끼리의 리그였다. 1970년대 한국 건설업체들이 지금의 인도처럼 토목과 건축공사로 이곳에 진출했지만, EPC로 가는 길은 아직 요원한 시절이었다.
3. 한국 EPC업체의 시장 진출
IMF사태라고 부르는 아시아 외환위기가 1998년에 한국 경제를 강타했다. 가혹한 구조조정이 있었지만, 한국업체들은 살기 위해 중동으로 눈을 돌렸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여는 2000년에 위기를 기회로 삼고자 하는 한국 해외영업 일꾼들의 저돌적인 공격과 끈질긴 노력이 시작된 것이다.
그 중에 아랍에미리트는 중동 산유국 중 가장 자유로운 나라로, 그러나 범접하기 어려운 나라로 보였다. 특히 두바이는 한국의 가장 큰 해외건설 시장인 사우디와 쿠웨이트로 가기 전 경유를 위해 잠깐 들렸다가 맥주 한잔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 업체들의 안마당이었으며, 중동 북아프리카(MENA)를 커버하는 지역본부였다
한국의 SK건설(지금의 SK에코플랜트)이 1999년에 아랍에미리트에서 루와이스 유황처리시설 확장 프로젝트를 6천만 달러에 수주하면서 첫 테이프를 끊었다. 그러나 이때는 SK건설도 강한 구조조정을 벌일 때라, 프로젝트매니저를 포함한 주요 직원들이 정직에서 계약직으로 전환되어, 결국 프로젝트는 손실을 보면서 어렵사리 끝냈다. 결국 이 프로젝트의 실패로 약 8년동안 아랍에미리트에서는 후속 프로젝트가 나오지 못했다.
대림산업(현 DL이앤씨)이 1997년에 쿠웨이트로, GS건설이 1998년에 카타르로, 삼성엔지니어링이 2001년에 사우디로 달려 나가 첫 EPC 수주에 성공하면서 땅을 다지고 있었지만, 아랍에미리트는 2000년대 중반까지 한국업체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아직 이곳은 유럽의 강호인 테크닙, 스남프로게티, 테크니몽의 3개사가, 미국에서는 벡텔, 플루어, KBR 등이, 일본에서는 치요다와 JGC가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아드녹과 CCC의 합작으로 1973년에 설립된 NPCC가 전체 발주 물량의 10%를 점유하면서 이때부터 기염을 토하고 있었다.
그래프-1. 아랍에미리트 연도별 오일/가스 플랜트 EPC 프로젝트 발주 규모 (2001년-2023년)
2007년이 되어서야 아랍에미리트의 빗장이 열렸다. 먼저 스페인의 테크니카스 리유니다스(TR)가 중남미에서 방향을 틀어 2003년에 사우디로 들어간지 4년만에 아랍에미리트 시장으로 침입했다. TR이 보루쥐(Borouge 3) 프로젝트의 간접 및 동력시설을 12억 달러에 수주한 것이다. 삼성엔지니어링도 사우디에서의 성공적인 진입에 힘입어 2007년에 보루쥐 OCU 패키지를 3억 달러에 수주하면서 아부다비에 처음으로 상륙했다. GS건설도 카타르와 쿠웨이트에서의 성공적인 진입으로 11억 딜러의 그린디젤 프로젝트를 수주하면서 2008년에 아부다비로 기수를 돌렸다. 바야흐로 한국과 스페인이 가세하면서 아랍에미리트가 중동 오일/가스 플랜트 시장의 가장 뜨거운 중심지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4. 2009년 아랍에미리트에서 무슨 일이?
2008년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다. 이 위기는 중동의 건설시장을 순식간에 셀러 마켓에서 바이어 마켓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EPC업체들을 잠시 아사 직전의 위기로 몰았다. 산유국 발주처들은 이 기회를 틈타 경기부양이라는 이유로 초대형 프로젝트들을 더욱 빠르게 진척시켰다. 즉, 위기 후에 곧 바로 EPC기업들에게 최대 호황으로 다가왔다.
2009년에 사우디에서 150억 달러의 오일/가스 플랜트가 발주되었지만, 아랍에미리트에서는 그 발주 규모가 327억 달러가 되면서 사우디를 두배 이상 앞질렀다. 특히 전체 발주 금액 중 한국 EPC업체의 수주 비중이 51%로 크게 뛰어올랐다. 서방 업체들은 그 점유율이 28%로, 일본 업체들은 7%로 각각 떨어졌다.
특히, 루와이스 정유공장 확장 프로젝트에서 GS건설, SK건설, 삼성엔지니어링, 대우건설의 4개사가 5개 패키지 모두를 96억 달러에 싹쓸이 수주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가스코가 발주한 100억 달러 규모의 가스통합개발 프로젝트(IGD)에서는 현대건설, GS건설, 현대중공업 등 3개의 한국업체가 총 39억 불의 수주를 따냈다. 그 기세로 삼성엔지니어링이 비료공장을 12억 달러에, SK건설이 밥 가스압축시설을 8억 달러에 따내는 승전고를 울렸다. 오일머니를 차지하기 위한 전 세계 EPC업체들의 수주전에서 승자는 단연 한국이었다. 여기에 더해 한국 컨소시엄이 바라카(Barakah) 원자력 발전소를 200억 달러에 수주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래프-2, 한국 EPC업체의 아랍에미리트 오일/가스 플랜트 EPC프로젝트 시장 점유율 (2001년-2021년)
그야말로 한국 EPC업체의 전성 시대였다. 그동안 2군으로 여겨졌던 한국의 EPC업체들이 2009년 한 해에 오일/가스와 원자력 발전에서 350억 달러 이상을 수주하면서 사막의 돌풍을 일으키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루와이스가 한국 업체들에게 기회의 땅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수도 아부다비와 중동 물류 허브가 있는 두바이에는 수많은 한국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건설 기간 중에는 한국과 관련된 모든 것이 호황이었다. 서방 업체들은 한국 EPC업체가 왜 이렇게 잘하는 지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5. 저가 수주의 후유증
그동안의 중동 플랜트 진출 역사를 살펴보면, 한국의 EPC업체들은 2000년에서 2004년까지의 탐색기를 보내고, 2005년부터 2008년까지는 진입기를 거쳤다. 그리고 전성기의 첫 해라고 할 수 있는 2009년에 전반적이며 본격적인 경쟁판이 열렸다. 한국 빅5의 각 사별 연간 평균 수주 금액도 탐색기에는 수억 달러 규모에서, 진입기에는 10억 달러로 커졌다. 해가 갈수록 수주 목표는 매년 높게 잡아야 했으며, 결국 2009년부터는 한국 업체들 간 양보할 수 없는 처절한 경쟁으로 번졌다.
우리끼리의 묻지마식 경쟁은 결국 무모한 저가 수주를 낳았다. 한국의 EPC업체가 싹쓸이 수주했던 루와이스 정유공장 확장(RRE) 프로젝트가 계약한 지 3-4년이 지나가면서 막대한 손실을 드러냈다. 수주 당시, 한국 업체들에게 기회의 땅이었던 루와이스가 사업이 진행되면서 무덤으로 변했다. 한국 업체로는 가장 많은 36억 달러를 수주한 GS건설에서는 RRE쇼크라는 말이 돌았다. 2013년에는 RRE 정유공장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EPC업체들이 줄줄이 실적 쇼크를 기록했다.
대규모 손실을 본 현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중동의 전체 현장으로 퍼져 나갔다. 그 동안 소문으로만 나돌던 저가수주로 인한 손실이 2013년도의 재무제표에 반영되면서 세계가 알게 되었다. 이렇게 한국 업체는 서로의 무모한 경쟁속에 손실을 보면서, 해외 수주를 향한 의욕은 사라지고 쇠락기를 맞았다.
한국 업체들이 싹쓸이하던 시절, 유럽 업체에겐 위기감이 번졌으며, 한국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들은 한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맞서기 위해 인도를 택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이제 이태리의 사이펨과 테크니몽은 모든 상세설계와 구매 그리고 건설관리 업무를 인도 엔지니어링센터를 통해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다. 테크닙은 인도인 위주로 구성된 아부다비 오피스에서 직접 EPC를 수행한다. 페트로팩은 대다수의 인도인으로 구성된 경영층과 직원들이 본사를 아랍에미레이트의 샤자에 두고 저돌적으로 앞서 나간다. 플루어는 대부분의 상세 설계를 인도와 필리핀에서 소화한다. 인도인 관리자와 엔지니어로 구성된 유럽 업체들은 이제 여느 인도회사와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은 인도 업체와 싸울 수 있는 가격 경쟁력이 생긴 것이다. 이제 한국은 경쟁 대열에서 점점 소외되어 가고 있다.
그래프-3. EP업체들의 아랍에미리트 오일/가스 플랜트 프로젝트 실적(2001년-2022년 상반기)
6. 아랍에미리트는 또 다른 인도다.
아랍에미리트의 인구는 2021년을 기준으로 1,000만 명을 넘겼다. 그 중의 약 반은 인도계 출신 이주민이다. 자국민이라 할 수 있는 아랍인은 전체 인구의 11.5%에 불과하다. 자국민보다 4배 이상이나 많은 480만 명의 인도, 파키스탄 그리고 방글라데시인들이 아랍에미리트에서 일하며 살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에서의 플랜트 건설 관련 모든 비지니스는 인도인과 연계되어 있다. 발주처, 정부기업, 현지 건설업체, 전문하청업체, 벤더 및 인력 공급업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인도인이어서, 인도인을 활용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더구나, 최근에 인도와 아랍에미리트 간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됐다. 인도인이 아랍에미리트에서 생활하는 것은 인도에서 생활하는 것과 100% 똑같다. 그래서 아랍에미리트는 또 다른 인도다.
선진 EPC업체들은 가격 경쟁력이 있는 엔지니어링 자원의 확보를 위해 그 동안 본국이 아닌 인도에서 엔지니어링센터를 설립하여 운영하여 왔다. 그러다가, 중동 산유국의 오일머니를 쫓아 인도인으로 무장한 엔지니어링센터는 아부다비로 넘어왔다. 프로젝트가 발주되는 곳에 위치해야만 수주와 수행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아부다비는 엔지니어링업체에게 좋은 조건을 구비하고 있다. 아부다비는 도로, 통신, 의료, 금융 등의 인프라가 잘 갖춰진 현대적인 곳이며, 아직까지는 법인세와 개인 소득세가 없다. 지사 형태라도 자유롭게 엔지니어링센터의 운영이 가능하며 현지법인 설립도 쉽다. 전세계의 인력이 모이는 곳이니 인적자원도 풍부하다. 더구나, 아랍에미리트는 오일/가스 플랜트 프로젝트가 대량으로 발주되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2023년에는 사우디보다 더 많은 프로젝트가 발주되는 중동 플랜트 건설의 핫플레이스가 된다.
아랍에미리트 엔지니어링센터의 선두주자는 프랑스의 테크닙이다. 테크닙의 아부다비 엔지니어링센터는 1984년 이후로 중동 각국에서 수주한 각종 프로젝트의 EPC를 직접 지원하고 있다. 테크닙 아부다비에서는 인도인 위주로 구성된 1,000여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영국의 페트로팩도 1991년에 아랍에미리트의 샤자에 본사를 열었다. 영업에는 영국인을, 경영에는 아랍인을, 수행에는 인도인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중동에 맞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미국의 맥더모트는 두바이의 제벨알리에 조선소를, 캐나다의 SNC라발린은 아부다비에 지역본부를 두고 있다. 인도의 도쌀은 2003년에 본사를 아예 두바이로 옮겼다. 중동 제일의 건설업체인 CCC는 시공위주에서 EPC업체로 발전하기 위하여 그리스 본사에 있는 엔지니어링 센터를 아부다비로 이전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세계화는 깨자고 블록으로 나눠지고 있다. 결국 우리가 갈 수 있는 가장 큰 플랜트 건설 시장은 중동으로 귀착된다. 우리는 수많은 대형 플랜트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수행했음에도 왜 아부다비에 엔지니어링센터를 설립하지 못했을까? 우리는 왜 아랍의 대기업들과 제휴하여 합작사를 만들지 않았을까? 우리는 왜 오랜 경험의 전문가들이 있음에도 그 매니지먼트 능력을 활용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왜 인도 엔지니어링센터 운영에 실패했을까? 아랍에미리트가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중동플랜트 건설의 중심지가 되어 가는 시점에 생각나게 하는 질문들이다.
7. 아랍에미리트 플랜트 시장 전망
2019년 아랍에미리트의 플랜트 프로젝트 발주 금액은 저유가의 영향으로 역사상 가장 낮은 29억 달러였다. 이것은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첫 번째 해인 2020년의 발주 규모 30억 달러와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코로나19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2021년의 발주 규모는 167억 달러로 최대 호황기때와 맞먹었다. 위기 뒤에 기회라는 말이 적중했다.
2022년의 발주 예상 규모는 100억 달러대로, 전년도 대비 40% 낮으나, 그래도 연평균 70억 달러보다 높다. 2022년의 아랍에미리트는 타지즈가 발주하는 50억 달러 대의 플랜트 프로젝트에 대한 최종투자결정에 달려있다. 아부다비 국영석유회사와 아부다비 개발지주회사의 합작사인 타지즈는 스위스의 프로만과 공동으로 15억 달러의 메탄올 플랜트를, 인도 최대 그룹인 릴라이언스와 공동으로 21억 달러의 EDC/PVC플랜트를, 미쓰이 및 GS에너지와 제휴하여 10억 달러의 블루 암모니아 플랜트를, 그리고 자체적으로 5억 달러의 열병합 발전소를 각각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대망의 2023년에는 아랍에미리트에 새로운 호황 국면이 대기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특수 상황이 덧붙여 아랍에미리트의 플랜트 발주 규모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140억 달러 보다 훨씬 높은 200억 달러로 치 오를 전망이다. 그동안 밀려 있거나 연기되었던 프로젝트 등을 포함하여 바이오 정유공장, 석유화학 프로젝트, 하일과 가샤 가스전 개발을 포함한 수많은 업스트림 프로젝트, 푸자이라 LNG플랜트 등이 발주되며 그 규모는 200억 달러를 넘긴다. 중동 플랜트 건설의 중심지로 등극하고 있다.
그동안 아랍에미리트에서의 EPC판도는 한국 EPC업체의 몰락과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크게 변했다. 아랍에미리트에서 플랜트 프로젝트는 쉬지 않고 나왔지만, EPC 플레이어가 바뀌었다. 지난 3년간 아랍에미리트에서 인도 인력으로 무장한 유럽 업체는 건재했으나 한국과 일본 업체는 한 건도 수주하지 못했다. 그 동안 한국이 차지했던 자리는 아랍 현지업체들이 차지했다. 한국의 플레이어들은 다섯 개에서 두 개로 줄어 든 반면에, 그리스의 아키로돈과 CCC, 오만의 갈파르, UAE의 타겟과 롭트스톤, 그리고 알아삽 등이 새로운 다크호스가 되었다.
그래프-4. 아랍에미리트의 최근 3년 동안 오일/가스 플랜트 EPC 강자들 (2019년-2022년 상반기)
8. 아랍에미리트에서 우리는 왜 실패했는가?
2009년 어느 날, 한국의 EPC업체들은 사막의 태풍처럼 아랍에미리트로 몰려갔다가, 4-5년 후 소리 없이 빠져나왔다. 대부분이 손해를 봤다지만, 레슨런(Lessons Learned)은 없었다. 2019년 이후로 지금까지 한국 EPC업체들은 아랍에미리트에서 오일/가스 플랜트를 한 건도 수주하지 못했다.
2021년에 가장 관심을 모았던 보루쥐 4 석유화학 콤플렉스의 3개 폴리머 패키지 입찰에서 이탈리아의 테크니몽이 삼성엔지니어링, 현대건설/현대엔지니어링, GS건설, 그리고 인도 L&T와 중국 사이노펙 등의 경쟁을 꺾고 35억 달러에 수주했다. 한국의 EPC업체들이 인도인력으로 무장한 이탈리아 업체와 싸워 가격 경쟁에서 진 것이다. 또한, 지난 3년 동안 실시된 40여건의 중소형 규모의 육상분야 오일/가스 플랜트 입찰에서 한국 업체의 참여는 없었다. 우리는 의욕을 잃었으며 방황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몰랐으며, 무엇을 잘 못했는가?
1) 우리의 수주 영업은 아마추어적이다. 영업은 누구나 쉽게 다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주 영업을 위한 교육 훈련도 없으며, 수주 성공에 따르는 보상도 없다. 수주가 가장 어렵다고 하면서도 수주 전문가를 키우지 않는다. 우리에겐 노련한 수주 전략이나 수행 전술이 없다. 그냥 싸울 뿐이다.
2) 우리는 글로벌 경영을 모른다. 본사는 한국에 있으며, 모든 일을 한국인들이 한국어를 쓰면서 낮 시간에만 일한다. 해외에 새터라이트(Satellite) 엔지니어링 오피스도 없으며, 현지에서 엔지니어링이나 설계를 하지 않는다. 중동 현장에서는 한국인들끼리 같은 숙소에서 한국 음식을 먹으며, 한국말로 회의를 한다. 우리에게 현지화란 낯선 일이며 위험한 일이다.
3) 우리는 3국 인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중동 비즈니스를 하면서도 인도 인력 사용에는 무조건 반대하는 경향이 있다. 인건비는 EPC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으며, 프로젝트 수주와 수행의 승패를 좌우한다. 우리 인건비가 높아 입찰 경쟁에서 진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서방의 선진 EPC업체들이 엔지니어링과 건설 수행에 성공적으로 인도 인력을 활용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깨닫지 못하며 배우려 하지 않는다.
4) 우리는 경쟁사를 무조건 적으로 인식한다. 우리는 경쟁사와 만나거나, 교류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서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으며, 협력하지도 않는다.
5) 우리 EPC업체는 현지의 제네콘(General Contractor)을 활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직도 벤더나 시공 업체를 파트너가 아니라, 을로 인식한다. 특히 대형 플랜트 프로젝트에서 EP와 C의 컨소시엄이 강한 가격 경쟁력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 현지 업체와 파트너로 제휴하는 것은 물론이고, 현지 합작사 설립에는 관심이 없다.
6) 우리 EPC업체와 플랜트 기업들이 아랍에미리트에서 땀을 흘렸던 지난 30년 동안 우리는 단합하지 못했다. 아랍에미리트에서 발주된 대부분의 초대형 프로젝트들을 수주하고, 수행하고, 손실을 보면서 대단한 실적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용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업체들이 어느 순간 도망치듯 나와 실적을 팽개쳐 버리고 발길을 끊었다.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포스트 코로나에 따른 호황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만들어 낸 기회의 연속 속에 EPC업체와 플랜트 기업에게 천재일후의 기회가 왔다. 코로나19가 석유화학 플랜트 건설 붐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LNG 프로젝트와 가스전 개발 광풍이 불고 있다. 2050 탄소중립 정책은 그린수소 플랜트와 바이오 정유공장을 무한정 짓게 하고 있다.
그 호황의 중심지에 아랍에미리트가 있다. 아랍에미리트에 새롭게 도전하여 과거의 실패를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20년전 한국 해외 영업 일꾼들의 저돌적인 공격과 끈질긴 노력으로 중동 시장이 개척되었다. 이제 그때와 같은 초심으로 실패와 시행착오를 성공의 디딤돌로 삼아, 치밀한 수주 영업을 진행할 때다. 끝.
(상기는 해외건설협회에서 2022년 6월 31일에 발간한 2022년 2분기 “K-BUILD저널 기획 과제“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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